울며 와서 웃으며 나가는 곳
어제 차를 타고 지나가는데 도시의 풍경 속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곳곳에 걸린 다양한 광고 현수막 중에서도 이상하게 많이 보였던 것은 사주와 신점을 알리는 현수막이었다. 붉은 글씨로 큼지막하게 적힌 문구들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으려는 듯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는데, 그중 한 현수막이 내 시선을 오랫동안 머물게 했다. '울면서 와서 웃으며 나가는 곳.' 그 문장은 단순한 홍보의 문구라기보다는 어떤 선언 같았다. 삶이 고단한 사람, 마음이 지친 사람, 방향을 잃은 사람들을 향해 애써 건네는 위로처럼 느껴졌다. 울며 들어와도 웃으며 나갈 수 있다고 말해주는 곳이라니, 그 자체로 이미 작은 희망의 문장이 아닌가 싶었다.
그 문구를 보는 순간 나는 올해 초의 기억이 떠올랐다. 연초였고, 사업이 불안해지고 마음이 무거웠던 시기였다. 그때 길거리 배너에 적힌 ‘전화 사주’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적인 충동처럼 번호를 눌렀고, 곧 명리학을 기반으로 상담을 한다는 분과 통화가 연결되었다. 그는 내 생년월일과 몇 가지 기본 정보를 묻고는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1분 정도의 정적이 흘렀는데, 그 짧은 시간조차 묘하게 긴장되고 설레었다. 그리고 이윽고 들려온 첫마디는 “그동안 사업이 잘 안 되셨을 거예요”였다. 나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잘 됐었어요. 최근에 안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돌아온 말은 나를 더 당혹스럽게 했다. “그건 더 잘될 거였는데 그 정도밖에 안 되셨던 거예요. 그게 안되신 겁니다.”
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과분하다고 여겼던 시기가 사실은 ‘안된 것’으로 규정되는 순간이었다. 그 말은 마치 내가 이룬 성취와 기쁨을 부정하는 것 같았지만, 동시에 묘했다. 그렇다면 내가 붙잡고 있는 성공의 기준은 어디쯤 있었을까. 스스로 최고라 여긴 그 순간조차 누군가의 눈에는 아직 부족한 시도일 수 있다는 사실이 당혹스럽게 다가왔다. 그러나 더 이상 따져 묻지는 않았다. 그분은 이어서 말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지금 안 되는 건 눌린 운의 여파일 뿐이에요. 사장님은 4월부터 풀리면서 계속 잘되실 거예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안도했다. 마음이 놓였고, 숨통이 트였다. 단지 앞으로 잘 될 거라는 말, 그것 하나만으로도 버틸 힘이 생겼다. 지금은 어떤가? 지금은 8월이고, 솔직히 말해 최악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다시 전화를 건다면 그는 아마 또 말하겠지. “여파가 아직 남아 있을 뿐입니다. 곧 좋아집니다.” 그러나 나는 되묻고 싶지 않다. 예언이 틀리든 맞든 중요한 것은 이미 지나갔다. 그날 내가 전화를 끊으며 웃을 수 있었던 사실, 그것만이 내게 남았다. 그 웃음은 결코 가짜가 아니었다. 불안한 나를 잠시라도 가볍게 해 준 위로였으니까.
돌이켜보면 우리는 살면서 늘 답을 찾으려 한다. 왜 일이 안 풀리는지, 언제 다시 좋아질지, 어디쯤에 내가 서 있는지. 하지만 사실 그런 답은 누구도 정확히 말해줄 수 없다. 다만 필요한 순간에 건네지는 위로의 한마디, “곧 괜찮아질 거예요”라는 말은 사람을 살게 한다. 신점이든, 사주든, 혹은 그냥 친한 친구의 입에서 나온 말이든 그 힘은 다르지 않다. 그 말을 믿어서가 아니라, 믿을 수 있는 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시 현수막을 떠올린다. “울면서 와서 웃으며 나가는 곳.” 누군가는 그 문구에 기대어 그곳을 찾아갈 것이다. 낯선 사람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진한 위로와 응원을 받으며 돌아올 때 웃음을 되찾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그것을 미신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웃음을 되찾은 그 순간만큼은 진짜다. 마음이 무너진 사람에게 필요한 건 예언이 아니라, 웃음을 되찾게 하는 작은 불씨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그곳에서 울음을 웃음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 현수막을 응원한다.
생각해 보면 글을 쓰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무거운 마음으로 글을 읽다가, 잠시라도 위로를 얻고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내가 쓰는 글이 누군가의 현수막이 될 수 있다면, 울며 와서 웃으며 나가는 글이 될 수 있다면, 나는 오늘도 계속 써야 한다. 삶은 언제나 불안정하고, 답은 쉽게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서로의 마음을 붙잡아 줄 수 있는 작은 문장들이 있다. 어제의 현수막처럼, 누군가의 하루를 붙잡아주는 글을 쓰고 싶다.
결국 삶은 울며 시작해서 웃으며 나아가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그 과정을 함께할 수 있는 말, 함께할 수 있는 얼굴, 그리고 함께할 수 있는 문장이다. 나는 내 글이 누군가에게 잠시라도 그런 힘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의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매출은 초라하지만, 웃으며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만큼은 손에서 놓지 않는다. 어제 본 그 현수막이 가르쳐준 건 바로 그것이었다. 울며 들어와도 웃으며 나갈 수 있다는 믿음. 나는 그 문구를 오래 간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