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의 트라우마
큰 사고라는 것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사고 자체보다, 그 뒤에 남는 마음의 잔해였다. 나는 그 사실을 두 주 전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기한에 쫓기며 고객의 브랜드 캐릭터를 복원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사실 나는 거절해야 했다. 원본 파일이 없는데도 “급하다”는 이유, “부재중인 디자이너 대신 부탁한다”는 이유만으로 일을 맡아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날, 나는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 요즘처럼 발주가 흔치 않은 시기에 3천 개 대량 주문은, 솔직히 말하면 놓치고 싶지 않았다. “조금만 더 힘내 보자”는 마음으로, 잠깐의 무리함을 스스로 용서했다.
이미지에서 직접 색을 추출해 아이보리 컬러를 맞추던 순간까지도, 모든 것이 괜찮아 보였다. 모니터 속에서는 늘 그렇듯 색이 아름답게 정돈되어 있었고, 내 눈도 그 색을 신뢰했다. 단지 C값이 아주 미세하게 섞여 있다는 사실 하나만 제외하면. 그 작은 숫자 하나가 뒤틀린 색을 만들어낼 줄, 그때는 몰랐다.
상품이 고객에게 도착한 날, 내 마음도 함께 무너졌다. “아이보리가 옅은 하늘색으로 인쇄됐다”는 항의가 시작되었을 때, 나는 처음엔 사실을 차분히 설명하려 했다. “원본이 없었고, 팬톤값을 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냥 알아서 해달라고 했다”는 점도 말하려 했다. 하지만 고객은 단호했고, 공격적이었고, 무엇보다 불안해 보였다. 팬톤값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모르는, 이제 막 프로젝트를 맡은 신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말투는 예민했고, 책임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섞여 있었다.
그때 나는 또 한 번 마음으로 움직였다. “이 고객의 마음도 이해된다”는 이상한 본능 같은 것이 스르르 들어왔다. 그래서 큰 손실을 감수하며 환불을 하겠다고 결정했다. 그 순간까지는,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고, 상처를 입히는 다툼보다는 물러서서 책임을 지는 건 더 성숙하고 멋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이 일을 경험 삼아 앞으로 잘하면 되는 거라고. 하지만, 나는 괜찮지 않았던 모양이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사고는 수습됐지만, 내 마음은 회복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상담창을 열 때마다 심장이 뛰었다. 사고가 나는 것을 상상했고, 지금은 상냥한 이 고객의 말투가 거칠게 변하는 것이 들리는 듯 해 전화를 끊고 싶었다. 카카오톡 상담이 울릴 때마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괜찮다고,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스스로 수백 번 말해보았지만 불안은 말을 잘 듣지 않았다. 그 신입 담당자의 날 선 말투가, 불쑥불쑥 귓가에 다시 돌아왔다. “내가 전문가가 아닌데 색을 어떻게 아느냐”던 말. “당신이 이렇게 해서 내 프로젝트를 망쳤다”던 말. 이미 끝난 대화인데도, 나는 마치 아직도 그 자리에서 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처럼 반응했다.
그래서 복원 요청이 들어오면 이전처럼 부드럽게 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원본 파일이 없으면 진행이 어렵다”라고 매뉴얼대로 설명하면, 두 명 중 한 명은 바로 포기해 버렸다. 예전 같으면 이탈이 아까웠고, 고객을 잃는 느낌이 싫었지만 지금은...... 솔직히 말하면, 마음 한편이 안도했다.
이상했다. 왜 나는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고를 먼저 걱정하며, 새로운 고객에게서조차 위협을 느낄까.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불안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반응인지도 모른다. 크게 다친 사람이 다시 길을 걸을 때 다리가 떨리는 것처럼, 나는 마음이 크게 다친 것이다. 예전의 내가 아니라고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무모한 친절과 과한 책임감으로 일해 온 결과가 이번 사고였다면, 그 반대편 극단으로 가 있는 지금의 나 역시 회복 과정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사업에서 마음만으로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고객이 어려워 보이면 나도 모르게 감정이 움직였다. 냉정한 경계선은 머리로는 아는데, 상황 앞에서는 늘 지켜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번 일을 겪고 나니, 이제는 그 경계를 배워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다. 너무 마음으로 가면 상처가 깊어지고, 너무 냉정하면 사람이 사라진다. 그 사이 어딘가, 내가 견딜 수 있는 적당한 선을 찾아가는 중일 것이다.
지금의 나는 상담 앞에서 심장이 뛰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떨림조차, 내가 더 단단해지기 위한 신호라고 믿어보기로 한다. 일이 힘들었다고 해서 내가 부족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책임을 지고 손실을 감수할 수 있었던 사람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니 오늘도 조심스럽게 상담창을 연다. 두려움이 있어도, 손실이 두렵고 말투가 떠올라 가슴이 뛰어도, 나는 다시 일하는 사람이다. 그 속에서 내 방식의 균형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언젠가 마음이 다시 편안해졌을 때, 나는 오늘의 나를 돌아보며 말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나는 더 따뜻하게 노련해졌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