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이 세상을 구하지는 못하더라도.

누군가의 하루를 구하기 위한 두드림.

by 이손끝

당신의 글이 세상을 구하지는 못하더라도, 누군가의 하루는 구할 수 있다.

로이 피터 클라크 (Roy Peter Clark)




글을 쓰고 발행 버튼을 눌렀다. 익숙한 동작인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휑했다. 뭔가 중요한 걸 쏟아낸 것 같은데,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걸 올려버린 느낌이 함께 따라왔다. 가슴속 어딘가가 시원하다가도 금세 허전해지는 감정. 글을 쓸 때마다 겪는, 이름 붙이기 어려운 이 낯선 감정의 정체가 뭘까 곱씹게 된다. 글을 올린다는 건 결국 내가 한 조각 드러나는 일이다. 어쩌면 내가 부끄러워하는 어떤 결이, 낱말로 고스란히 노출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것을 누군가가 본다면, 누군가가 스쳐간다면, 그건 어떤 의미일까?


SNS에는 늘 대단한 문장과 날카로운 통찰이 가득하다. 고전에서 따온 명언, 인생을 통달한 듯한 말들이 피드를 가득 메운다. 그 속에서 내 글은 너무 평범하고 뻔하게 느껴진다. 마음이 힘들어서 썼고, 위로받고 싶어 썼는데, 결국 아무에게도 닿지 못하고 나만의 위로로 끝나는 건 아닐까. 내가 자주 느끼는 감정이다. 예를 들면, 어느 날은 너무 속상한 일이 있어서 글을 썼다. 자영업을 하며 겪은 고객의 무례함, 밤늦게까지 일하고도 수익이 남지 않던 날들, 엄마로서도 사장으로서도 실패한 것만 같은 날의 고단함. 나는 그저 내 마음을 토로했을 뿐인데, 그 글에 “나도 같은 감정 느낀 적 있어요”, “이 말이 저를 붙잡아줬어요”라는 댓글이 달렸다. 순간 깨달았다. 내가 쓴 글이 거창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겐 충분히 필요한 문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럴 때 문득 떠오른 문장이 있다. “당신의 글이 세상을 구하지는 못하더라도, 누군가의 하루는 구할 수 있다.” 로이 피터 클라크의 이 말은 글을 쓰며 가장 외로웠던 내 마음을 붙잡아 주었다. 나도 누군가의 하루를 구할 수 있을까?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완벽하진 않아도, 정확하진 않아도, 진심이 담긴 문장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거창한 구원이 아니라, 아주 사적인 위로라도 줄 수 있다면. 오늘 하루 버티게 해주는 어떤 문장이 될 수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니 다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사실 나도 위로받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누군가 나에게 그런 글을 남겨주었기 때문이다. 힘든 시절, 우연히 읽은 한 에세이에서 “당신이 무너져도 당신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아요”라는 문장을 만났고, 그것 하나로 나 자신을 붙잡을 수 있었다. 그런 경험을 내가 했기에, 나도 그런 글을 남기고 싶은 욕망이 생긴 것 같다. 누군가 검색하다 우연히 들어온 블로그나 브런치 페이지에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을 법한 내 문장이, 누군가에겐 하루를 붙잡아주는 문장이 된다면. 나는 계속 써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쓴다. 키보드를 두드리며, 어딘가 있을 그 한 사람을 상상하며. 누군가에게는 작고 조용한 구원이, 때로는 내가 된다.


ChatGPT Image 2025년 9월 4일 오후 01_09_25.png




매거진의 이전글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