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나는 초등학교를 세 곳을 다녔다. 처음은 충남 당진, 그다음은 경기도 이천, 그리고 이천 안에서도 한 번 더 집 가까운 학교로 전학을 했다. 전학은 언제나 낯설고 불안했다. 새 교실의 공기, 낯선 책상 냄새, 교실 벽에 붙은 알록달록한 표어들. 모든 게 어색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두려웠던 건, 나를 ‘다시 소개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안녕. 나는...” 늘 목소리가 작았고, 아이들은 금세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나는 늘 조용한 전학생이었다.
그렇게 이천의 초등학교에 적응하던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말했다. “과학도서 독후감대회를 할 거예요. 참여할 친구들은 작품을 제출하세요.” 그 말에 교실이 술렁였다. 상을 받으면 전교조회 때 시상을 받는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상을 받는 모습을. 이름이 불리고,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그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 집의 책장에 꽂혀 있는 ‘백일장 수상 작품집’이 생각났다. 충남 당진에서 전학 올 때 버리지 못하고 챙겨 온, 반짝이는 금빛 표지가 달린 책이었다. ‘이 중 하나를 조금만 고치면 나도 상을 받을 거고 친구들은 나를 멋있다며 바라볼 거야.’
집에 돌아와 나는 작품집 중 마음에 드는 글을 골랐다. 주제를 살짝 바꾸고, 문장을 내 식으로 다듬었다. 손글씨로 옮겨 적으니 그럴듯했다. ‘이 정도면 아무도 모르겠지.’ 그날 밤, 나는 이상하게 들뜬 마음으로 잠들었다. 그리곤 다음 날, 글을 선생님께 제출했다. 며칠 뒤,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렀다. “이번에 쓴 글 정말 잘 썼더라. 너 이번에 최우수상이야. 시상식 날 교장 선생님 앞에서 상장을 받게 될 거야.” 그 말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꿈꾸던 무대였다. 내 표정을 잠시 보던 선생님이 물었다. “정말 네가 쓴 거니?” 나는 잠깐 숨이 멎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쓴 거예요.”
그날 집에 돌아오자 기쁨보다 죄책감이 먼저 밀려왔다. 식탁에 앉아도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계속 그 문장이 떠올랐다. ‘정말 네가 쓴 거니?’ 며칠을 끙끙 앓았다. 거짓말을 한 대가였다. 잠을 자다가도 심장이 쿵쿵거렸고, 학교 가는 길이 지옥 같았다. 결국 며칠 뒤, 나는 결심했다. 선생님께 고백하기로.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교무실 문 앞에서 손을 몇 번이나 쥐었다 폈다. 심장이 옷을 두드릴 정도로 세차게 뛰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사실은 그 글 제가 쓴 게 아니에요. 전 학교 수상작을 베꼈어요.”
선생님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다. 일단 교실로 들어가.” 오후 종례가 끝나고 다시 교무실로 불렸다. 선생님은 자리에 앉아 계셨고, 다른 선생님들도 근처에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솔직하게 말해준 것은 정말 고맙지만, 잘못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 해. 앞으로 살면서도 꼭 명심하길 바라. 거짓은 언젠가 들키게 돼.” 선생님은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라고 하셨다. 그리곤 매섭게 손바닥을 때리셨다. 매질은 아팠지만, 그보다 더 아팠던 건 그때 교무실에 계셨던 선생님들의 눈빛이었다. 실망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눈빛. 나는 눈물이 났다.
그날 이후, 내 이름은 시상자 명단에서 지워졌다. 상장은 다른 학생에게 돌아갔다. 조회 시간에 친구들이 박수를 치는 동안, 나는 뒷줄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움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거짓말의 무게를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그 후로 나는 ‘무대에 오르고 싶다’는 마음을 조심하게 다루게 됐다. 단순한 욕심으로 이뤄진 영광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상을 받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정말 중요한 건, 내가 나로서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지금도 가끔 그날의 따가운 손바닥이 기억난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진짜 나로 주목받고 싶어졌다. 조금은 부끄럽지만, 완전히 내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