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내 안의 관종 끼는 완전히 폭발했다. 새로운 교복, 새로운 교실, 새로운 친구들. 이 신선한 공기 속에서 나는 나를 새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엔 조용한 애로 남지 말자. 이번엔 활발한 애로 기억되자. 첫 포지션이 중요하다!’ 그게 내 목표였다. 그래서 목소리 톤을 일부러 높였다. “야~ 진짜 웃기다!” 같은 말을 평소보다 크게 내뱉었고, 쉬는 시간엔 친구들의 반응을 연구했다. 어떤 농담에 웃는지, 어떤 말투가 친근하게 들리는지를 관찰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나를 바꾼 건 무대였다. 중학교는 여러 동아리를 운영했고, 학기 초엔 각 동아리별로 오디션을 봤다. 나는 그때 결심했다. “무대에 설 수 있는 동아리는 다 지원하자.” 연극부, 밴드부, 찬양단.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었다. 하나같이 사람들 앞에 설 수 있는 자리였다. 그중 찬양단은 특히 인기 있었다. 학교가 기독교 재단이었기 때문에 매주 월요일 기도회 때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무대 위에 올라 찬양을 했다. 매주 무대가 있다는 건 나에게 ‘꾸준한 스포트라이트’였다. 그건 꼭 해야 할 이유였다.
연극부도 매력적이었다. 무대에 서는 횟수는 적지만, 연기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원래 사람들 앞에 나서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렸는데, 그 떨림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살아 있는 느낌이었다. 연극부에 들어가면 진짜 무대 연습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두 군데 모두 오디션을 봤다.
그리고,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밴드부에도 지원했다. 나는 악기를 다뤄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이유 하나로 드럼 파트에 도전했다. 연습실 한쪽에서 선배가 물었다. “드럼 칠 줄 알아요?”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태연하게 말했다. “예, 근데 좀 됐어요. 그래서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조금만 연습하면 다시 기억이 날 것 같아요!” 물론 거짓말이었다. 막대기를 쥐고 어설프게 흉내를 내다 결국 들켰다. “그럼 됐어요.” 선배의 짧은 한마디에 오디션은 끝났다. 나는 부끄러웠지만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그래, 뭐라도 해본 게 어디야.’
며칠 뒤 결과가 나왔다. 밴드부는 떨어졌지만, 찬양단과 연극부는 둘 다 붙었다. 두 개 다 붙은 건 나뿐이었다. “야, 쟤는 둘 다 붙었대!”라는 친구들의 수군거림이 들릴 때마다 가슴이 콩닥거렸다. 인정받았다는 기분. 그게 그렇게 좋았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두 동아리의 연습 시간이 겹쳤다. 결국 두 곳의 담당 선생님이 모여서 말했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할 것 같아.” 나는 며칠 동안 고민했다. 무대의 크기를 따져보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연극부는 1년에 몇 번, 찬양단은 매주 무대야.” 결국 나는 찬양단을 선택했다.
찬양단의 연습은 재밌었다. 수업을 빼고 연습에 참여해야 했고, 일찍 등교해서 새벽예배 리허설까지 했지만 힘든 줄 몰랐다. 매주 전교생 앞에서 조명을 받으며 찬양을 할 때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무대에 오르는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소음이 멈추고 나만 빛 속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박수를 원한 게 아니라, 살아 있다는 확신을 원했다는 걸.
물론 완벽하지는 않았다. 찬양을 틀렸고, 박자도 몇 번 틀렸다. 하지만 그런 순간조차 좋았다. 무대 위에서는 내가 평소보다 조금 더 용감해졌고, 조금 더 솔직해졌다. 노래가 끝나고 내려올 때면 다리에 힘이 풀리지만, 가슴은 벅차올랐다. 그 감정이 좋아서 나는 또 다음 무대를 기다렸다.
지금 돌아봐도 그 시절의 나는 참 순수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가슴이 뛰어서 무대에 올랐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보다 ‘한 번이라도 더 서보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 그 열정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아마 똑같이 했을 거다. 밴드부에 어설프게 지원하고, 거짓말을 하며 떨어지고, 두 동아리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찬양단을 택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정말 진심이었다. 무대는 여전히 나에게 두렵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두려움이 사라지면 더 이상 나답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소심하지만, 가슴이 뛰면 일단 서본다. 그게 내가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