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경쟁률이 센 동아리에 합격하고 나서 나는 새 친구들 사이에서 ‘웃기고 끼 많은 아이’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을 웃기는 일이 즐거웠고, 웃음소리가 들리면 가슴이 벅찼다. 그런데 문제는, 그 즐거움에 도가 지나쳤다는 거였다. 웃음을 얻기 위해서라면 상황을 조금 과장하고, 친구의 말투를 흉내 내거나 장난을 세게 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유머와 무례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웃기긴 했지만, 센스가 없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학교 안에는 자연스레 일진 무리가 만들어졌다. 초등학교 때부터 얼굴이 알려진 친구들, 외모가 돋보이거나 기가 센 아이들이 중심이었다. 그리고 그들 옆에는 ‘그들과 함께 다니지만, 무리로 인정받지 못한 아이들’이 있었다. 소위 바람잡이, 분위기메이커, 광대 같은 존재들. 나는 그 아이들과도 어울리려 노력했지만, 늘 어딘가 어색했다. 나는 웃기긴 했지만, 그들처럼 분위기를 장악할 정도의 감각은 없었다. 그저 무대에 서는 걸 좋아하는, 특이한 애로 남았다.
그런데 어느 날, 일이 터졌다. 일진 무리 중 한 명, A라고 하자. 독특한 말투로 유명한 아이였다. 나는 어쩌다 그 친구를 흉내 냈다. 정확한 억양과 표정까지 복사해 내자 반 아이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나도 신이 났다. 웃음이 터지는 그 순간, 나는 내가 중심에 서 있다고 착각했다. 그런데 그 웃음소리 너머에서, 일진 무리들의 시선이 나를 향해 있었다. 웃는 게 아니었다. 싸늘했다. 그들에겐 내가 A를 흉내 낸 게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그들의 무리’를 건드린 도발로 느껴졌던 것 같다.
그날 오후, 내 책상 위에 한 장의 쪽지가 올려져 있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쓰여 있었다. “너 학교 끝나고 뒤쪽 벤치로 나와.” 순간 심장이 쿵 떨어졌다. 손끝이 차가워지고, 다리에 힘이 빠졌다.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내게 일어나고 있었다. 방과 후, 종이 울리자 아이들이 하나둘 떠나갔다. 나는 가방을 메고 계단을 밟아 내려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졌지만, 결국 약속된 그 벤치 앞으로 향했다.
비가 내릴 듯한 잿빛 하늘 아래, 그들은 이미 와 있었다. 여덟 명이었고, 그 가운데엔 A가 있었다. 나는 그들 앞에서 말문이 막혔다. 한 아이가 다리를 꼬며 말했다. “너, A 흉내내고 다니냐? 미친 거 아냐?”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게 그냥 장난이었어. 미안해.” 내 목소리는 떨렸다. 나는 절대 그들의 적수가 아니라는 느낌을 가득 실어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말했다. “기분 나쁘게 할 생각은 아니었어.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야.” 순간, 내 눈에 비친 운동장 흙바닥이 유난히 진하게 보였다. 누군가 나를 밀거나 때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런데 의외로 그들은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보다가 “너 자꾸 거슬린다. 앞으로 조심해.” 하고 돌아섰다.
나는 그 자리에 한참 서 있었다. 무릎이 풀려 주저앉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손이 덜덜 떨렸고, 가방끈을 꼭 잡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날의 공포는 오래 남았다. 그들이 사라진 곳에 혼자 서 있을 때 느꼈던 축축한 공기, 그게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날 이후 나는 한동안 친구들 앞에서 무리한 장난을 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일진들의 영역에는 절대 침범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은 내 감정의 한계를 배운 날이었다. 웃음을 얻으려는 마음이 타인의 마음을 다칠 수도 있다는 걸, 누군가의 욕망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배웠다. 시선을 얻는 일은 타인의 경계 위에서 춤추는 일이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때의 나는 단순히 웃기고 싶었던 게 아니라, 주목받고 싶었던 거였다. 누군가 내 이야기에 반응해 주길, 내 존재를 느껴주길 바랐다.
그날 이후로 나는 ‘가슴 뛰는 무대’와 ‘감정의 절제’ 사이에서 오랫동안 균형을 연습했다. 무대는 언제나 설레지만, 동시에 위험하다. 웃기려다 울 수도 있고, 빛나려다 상처 받을 수도 있다. 그걸 안다는 건 어른이 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