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라봐, 눈 깔아!

6화

by 이손끝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력이 아주 나빴다. 칠판 글씨는 늘 번져 보였고, 교실 맨 앞자리가 내 자리였다. 그래서 안경은 당연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안경을 쓰는 게 싫었다. 안경을 쓰면 눈이 조그맣게 보였고, 못난이 같았다. 점점 친구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고, 낯선 사람들의 눈길도 불편했다. 예쁘게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렌즈를 살 돈은 없었고, 결국 선택한 건 안경을 벗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태로 학교를 다녔다.


세상은 늘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사람의 얼굴은 윤곽만 남았고, 표정은 읽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눈을 찡그리고 앞을 봤다. 잘 보려고 애쓰는 표정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무뚝뚝하거나 노려보는 얼굴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길을 걷다 지나가던 무리 중 한 명이 툭 던지듯 말했다. “눈깔 똑바로 뜨고 다녀.” 욕설이었다. 그 말이 귀에 꽂히는 순간, 나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그저 앞이 안 보여서 눈을 찡그리고 있었을 뿐인데, 누군가에겐 시비 거는 얼굴로 보였던 모양이다.


결정적인 일은 어느 날, 화장실에서 벌어졌다. 쉬는 시간, 손을 씻으러 들어갔는데 거울 앞에 서 있는 한 언니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흐릿한 형체가 눈에 띄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언니는 ‘예쁘다’는 느낌이 바로 왔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쪽을 흘끔거렸다. 그 순간, 그 언니가 갑자기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뭘 꼬라봐, ○○아. 눈 깔아!” 욕설이 쏟아졌다. 나는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몸을 움츠렸다. 언니가 손을 들어 올리는 게 보였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리깔았다.


그때,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너무 예뻐서 쳐다봤어요...” 순간 공기가 바뀌었다. 언니는 잠깐 멈칫하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미친. 암튼 눈 똑바로 뜨고 다녀라. 뒤지기 전에.”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네...”라는 대답만 겨우 흘러나왔다. 화장실을 나와 복도를 걸을 때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마음속에서는 큰 소리가 나며 무언가가 부서진 느낌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언니는 이미 지역에서도 유명한 예쁜 언니 배0선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더 조심하게 걸었다. 사람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였고, 시선은 늘 바닥을 향했다. 그런데 앞이 안 보이니 더 이상한 일들이 생겼다. 얼굴을 구분하지 못해 목소리로 사람을 알아봤고, 누군지 확신이 서지 않으면 습관처럼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알고 보니 처음 보는 사람이었거나, 이미 아는 친구였던 적도 많았다. 내 사정을 잘 아는 친구들이 아닌 아이들은 나를 사이코라고 했다. 점점 ‘이상한 아이’가 되어갔다. 늘 고개를 숙이고, 눈을 찡그리고, 엉뚱한 타이밍에 인사를 하는 아이.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보이지 않는 것보다 더 큰 문제를 안고 있었다. 잘 보이고 싶어서 안경을 벗었지만, 정작 세상과 나 사이의 거리는 더 멀어졌다. 보지 못하니 오해를 샀고, 오해는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나는 세상을 똑바로 볼 수 없었고, 세상 역시 나를 똑바로 보지 않았다. 그날 화장실에서 들었던 “눈 깔아”라는 말은, 단순한 욕설이 아니라 그 시절의 나에게 내려진 명령 같았다. 튀지 말 것, 바라보지 말 것, 존재를 최소화할 것.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 시절의 나는 일부러 세상을 노려본 게 아니었다. 그저 잘 보고 싶었을 뿐이다. 지금도 가끔 눈을 찡그린 채 앞을 보던 그 아이가 떠오른다. 안경을 벗고도 예뻐 보이고 싶었던 아이, 하지만 결국 세상에 오해만 남겼던 아이. 나는 그 아이를 이제야 조금 이해하게 됐다. 잘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도, 그 아이는 분명히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눈을 크게 뜨지 못해도, 마음만은 열어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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