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나는 참 되도 않는 깜냥으로 튀는 짓을 많이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철이 없었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대책 없음’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시험 기간이 되면 모두가 책을 붙들고 있을 때, 나는 선언했다. “나 공부 하나도 안 하고 시험 보면 몇 점 나오는지 볼 거야.” 그리고 정말로 공부를 안 했다. 대신 놀았다. 펑펑. 그렇게 나와 함께 논 친구는 딱 한 명뿐이었다. 반 아이들은 그런 우리를 보며 웃었다. 나는 그 시선이(한심일지, 신기함일지 모를) 또 좋았나 보다. 나와 함께 논 친구의 이야기를 훗날 들으니 그 친구 역시 20대 시절을 꽤나 방황했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관종끼를 확인해 주던 공범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 시절을 별 고민 없이 흘려보냈고, 친구들은 하나둘 대학에 들어갔다. 나는 고3. 2학기에 현장실습을 나갔다. 내가 살던 지역에서 제일 큰 대기업 생산직이었다. ‘그래도 대기업’이라는 말에 주변 어른들은 잘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나는 하루하루가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사무직 직원들은 생산직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고, 외부 감사 직원들 역시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인사를 해도 받지 않았고,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나는 점점 그들을 닮아갔다. 나 역시 인사를 하지 않았고, 무시로 대응했다. 그러자 돌아온 말은 “싸가지 없다”였다. 결국 나는 해고됐다. 현장실습생 중 최초였다고 했다. 그 말이 이상하게도 오래 남았다. ‘최초’라는 단어는 원래 내가 좋아하는 말인데, 그때의 나는 그 말이 부끄러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울었다. 차가운 겨울이었다.
그 후, 고등학생 때 따 두었던 디자인 자격증을 들고 인쇄소 편집부에 들어갔다. 이제는 뭔가 해보는 건가 싶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최저시급, 밤샘근무, 끝없는 수정. 모니터 앞에서 눈을 비비며 새벽을 넘기다 보면 멘탈이 먼저 무너졌다. 결국 그곳도 그만두었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길 위에 섰다. 치킨집, 패스트푸드점, 식당, 사무보조, 전단지 배포 알바.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부터 질문이 시작됐다. ‘내가 원했던 인생이 뭐였지?’ ‘나는 무엇이 되고 싶었지?’ ‘아니, 나는 대체 누구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답은 없는데 생각만 깊어졌다. 나는 그 질문들에 집착하듯 매달렸다. 서점에 가서 철학 코너를 기웃거렸고, 이해도 잘 안 되는 책들을 끝까지 읽었다. 니체, 사르트르, 카뮈. 책 속의 문장들은 때로는 위로가 되었고, 때로는 더 큰 혼란을 안겼다. 그래도 이상하게 책을 덮고 나면 숨이 조금 트였다. 세상에 나 말고도 이렇게 헤매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조금 덜 외롭게 했다.
그렇게 책을 읽다 보니, 어느 순간 펜을 들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노트 한쪽에 문장을 적고, 생각을 흘려보냈다. 처음엔 그냥 메모였다. 하지만 점점 길어졌다. 질문을 문장으로 옮기면 조금은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사는지, 무엇이 불안한지, 왜 자꾸 튀고 싶은지. 글로 쓰면 나 자신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 이유는 좀 더 단순했다. 결국 또, 글로써 나를 세상에 읽히고 싶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바로 관종끼였고, 가슴이 뛰고,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은 마음. 사람들 앞에 서는 일에는 실패해도, 글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무대 위에 서지 못한 대신, 종이 위에라도 나를 올려놓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중요한 선택들 뒤에는 늘 같은 욕망이 있었다. ‘나 좀 봐달라’는 마음. 무시당하기 싫었고, 사라지고 싶지 않았다. 펜을 든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철학적인 고민을 하는 척했지만, 그 밑바닥에는 아주 솔직한 욕망이 있었다. 세상에 나를 드러내고 싶었다. 누군가 내 문장을 읽고 “아, 이런 사람이 있구나”라고 말해주길 바랐다. 그 시절의 혼란과 질문, 그리고 관종 같은 욕망이 없었다면 나는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실패와 방황은 나를 망가뜨린 게 아니라, 결국 나를 쓰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여전히 세상에 나를 드러내고 싶어서. 조금은 부끄럽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