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스무 살이 되자 함께 어울리던 친한 친구들은 모두 대학에 갔다. 캠퍼스 사진을 올리고, 과 잠바를 맞춰 입고, 축제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들과 달리 일찍 사회로 나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고, 대부분 몸을 쓰는 일이었다. 보험회사 전단지를 들고 하루 종일 거리를 걸었고,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만들었다. 백화점 행사장에서는 화장품을 팔았고, 장난감 가게에서는 아이들보다 더 환하게 웃으며 장난감을 권했다. 연회장에서는 화장실 청소를 했고, 집으로 배달된 부품을 순서에 맞게 꽂는 부업도 했다. 손에 쥔 돈은 늘 생활비 정도였다. 미래를 꿈꾸기엔 턱없이 부족한 액수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돈을 버는 가치를 느끼지 못했고, 일찌감치 포기했다. 대신 꿈을 붙잡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꿈이라는 이름의 '주목'을 놓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다시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내 이름이 불릴 수 있을지. 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꾸준히 글을 올렸다. 짧은 이야기들이었다. 댓글이 달렸다. “글 잘 읽었어요.” “다음 편도 기다릴게요.” 그 몇 줄의 문장이 하루를 버티게 했다.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은 세상에서, 적어도 그곳에서는 내가 존재했다.
나는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한예종 극작과를 목표로 삼았다. 학원에 다니며 글을 고쳤고, 원고를 수십 번 다시 썼다. 결과는 늘 같았다. 탈락. 1년, 2년, 3년. 계속 떨어졌다. 간간이 지원했던 공모전도 마찬가지였다. 수십 번 지원해 받은 상은 장려상 하나였다. 상장보다 더 또렷하게 기억나는 건, 무한 새로고침을 해도 결과가 오지 않는 텅 빈 메일함이었다. 마치 나를 無로, 공백으로 분류하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세상도 나를 밀쳐내고, 꿈마저도 나를 거부한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그 질문은 점점 위험한 방향으로 흘렀다. 가끔은 정말,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거울을 보는 게 괴로웠다. “한심한 것. 왜 너는 이것밖에 안 되니?”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울렸다. 그 시기를 함께 버텨주던 남자친구도 결국 떠났다. 내 옆에 있는 게 힘들다고 했다. 이해는 됐지만, 버려진 기분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술을 마셨고, 담배를 피웠다. 처음엔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서였는데, 어느새 습관이 됐다. 몸과 마음을 동시에 망가뜨리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로 타락하기 시작했다. 아니, 타락이라기보다는 스스로를 방치하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아무나 만나 의미 없이 즐겼으며, 나를 막 대했다. 스스로에게 벌을 주고 받는 시간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무대에도 오르지 못했고, 글로도 인정받지 못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탈락했다. 문예창작과 탈락, 공모전 탈락, 인생에서도 탈락. 그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완전히 무너진 자리에서 나는 다시 글을 쓰고 있었다. 술에 취한 채 노트에 끄적였고, 담배 연기 속에서 문장을 만들었다. 아무도 읽지 않아도, 적어도 쓰는 순간만큼은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너무 젊었고 외로웠고 괴로웠다. 재능을 증명하고 싶은데, 사랑받고 싶은데, 무엇보다 존재를 확인받고 싶었는데 현실이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탈락은 나를 포기하게 만들지 않았다. 대신 나를 더 깊은 어둠으로 밀어 넣었다. 그곳에서 나는 나를 마주했다. 초라하고, 흔들리고, 그럼에도 여전히 쓰고 싶은 사람을. 그 시절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의 나로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탈락과 타락 사이에서 나는 끝내 죽지 않았고 살아냈다. 그게 내가 그 시절에 해낸 유일한 성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