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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뜰폰

by 소운

걸어가는 이름 모를 할머니를 보고 서글퍼졌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이번 가을은 내게 너무나 다정했고 잔인했다. 책이 잘되고 있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할머니가 암이라는 또 다른 전화를 받았다.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암. 평생 감기 한 번 안 걸리던 할머니는 그렇게 터무니없는 병명을 손에 쥐었다. 할머니를 3년 동안 보지 않았다. 아빠에 대한 원망 때문이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저 큰 바다를 사이에 두고도 이틀에 한 번은 전화를 하던 착실한 큰 손녀였다. 그런 내가 3년 동안 한 번도 전화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전화를 받은 다음 날 바로 부산에 왔다.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는 노란 얼굴을 하고서 내게 말했다. “그래도 내가 아프니까 내 보러 오네.” 더 이상 보고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 얼굴들을 마주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차라리 할머니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 그러면 아빠를 다시 보지 않아도 되니까. 나를 이런 괴물로 만든 아빠는 매정했던 나 때문에 자신의 엄마가 아프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자신이 가진 모든 마음을 퍼부어 주었다. 다른 표현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퍼부었다'라는 말만 남는다. 유학 당시 스카이프로 할머니랑 전화하던 중 남아있는 요금을 다 써서 끊긴 적이 있다. 전화 카드를 재충전하고 다시 전화를 걸면 되는 일이었다. 그때 나의 시간은 새벽이었고, 졸음은 이미 나를 덮쳤기 때문에 내일 전화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잠들어버렸다. 내가 잠을 선택한 줄 몰랐던 할머니는 다음 날 나에게 전화기 앞에서 하염없이 두 시간을 기다렸다고 했다. 그 이후론 할머니가 전화기를 내려놓을 때까지 늘 기다렸다. 그 기다림이 좋았다. “할머니!”라고 부르면 어김없이 ”밥뭇나.”라고 하던 부름이 좋았다.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재잘재잘 떠들면 무심한 목소리로 “맞나.”라고 말하던 대답이 좋았다.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채 두 달이 흘렀다. 요즘 세상에 핸드폰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한다. 바로 우리 할머니다. 신용불량자인 아빠는 요양병원에 있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알뜰폰 하나 제 명의로 못 만들어 주는 예순의 아들이다. 우리가 만들어 주면 안 되냐고 묻는 할머니가 있다. 며칠 전, 동생이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그 사람이 또 내 돈을 빼갔나 봐. 또 내 명의로 무슨 짓을 했나 봐.” 알고 보니 동생이 얼마 전 들어놓은 주택청약 자동이체였고, 동생과 우리는 안심했다. 그렇다. 우리는 할머니에게 만들어 준 그 핸드폰으로 아빠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 만들어 주지 못하는 손녀와 손자다.


얼마나 더 많은 글을 써야만 이 소재로 쓰지 않을 수 있을까. 소설을 내면서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고 생각했는데 자꾸만 고인 물이 다시 생겨난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우리도 가족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흔히들 말하는 다복하고 화목한 가정의 일원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럼 나는 어디 가서 늘 사랑만 받고 자란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마음을 차마 상상조차 못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아빠는 내게 서른이 넘었으니 얼른 결혼해야지,라고 말했다. 처음으로 "엄마처럼 남자 잘못 만나서 인생 망치기 싫어서 결혼하기 싫어."라고 했다. 부산역에 도착할 때까지 아빠는 아무 말 없이 운전했다. 나는 안다. 씨발이라고 욕했을 아빠의 속을. 겉으론 침묵해야 하는 아빠의 남은 삶을. 더 이상 김 씨가 아닌 자기 자식들을 대하는 아빠의 사뭇 달라진 태도를. 내가 잘 도착했는지 궁금해서 걸어오는 이질적이고 다정한 전화를. 늦은 밤 그리움에 가득 차 남긴 그 부재중을. 그러므로 나는 더 이상 결혼을 꿈꾸지 않는다. 더 이상 친구들의 결혼식에서 울지 않는다. 더 이상 사랑한다는 말에 모든 것을 내던지지 않는다. 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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