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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가끔 아빠를 보러 올지도 모르겠어

by 소운

가까운 책방에 들른 김에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 저녁 먹을래?"

"그래."


5년 만에 간 아빠의 사무실은 여전했다. 달라진 거라곤 고구마 난로뿐이라고 생각했는데 7년 전부터 있었던 거라고 했다. 고기를 사준다길래 국밥이 먹고 싶다고 대답했다. 사실은 고기가 더 먹고 싶었는데 부쩍 오른 물가와 아빠의 주머니 사정이 툭 튀어나왔다. 내가 사줘도 되는데 영 내키지 않았다. 수중에 충분한 돈이 있는데도 자꾸만 튀어나오는 이 가난의 습관이 지긋지긋했다. 그리고 이 가난을 내게 안겨 준 사람에게 그 무엇도 사주고 싶지 않았다. 우리 엄마 돈이니까.


아빠 사무실 옆에 있던 국밥집이 망해서 근처 칼국수 집으로 갔다. 메뉴판을 보자마자 차돌박이 비빔밥이 제일 먹고 싶었는데 아빠가 먼저 "나는 차돌박이 비빔밥." 이라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손부터 발까지 아빠와 판박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아빠의 투박한 손과 발 그리고 넓은 이마를 닮은 것은 한 번도 자랑스러운 적이 없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사람들이 내게 손이 예쁘다고 말할 때마다 속으로 ‘거짓말하네.’라고 생각했다. 내 손은 아빠와 겉으로 닮지 않았는데,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 자신과 닮았다고 계속 말했던 걸까?


밥을 기다리면서 아빠와 시답잖은 이야기를 했다. 사실 할 말이 없어서 그랬다. 4년 만에 만난 아빠와 나눌 이야기는 분명 많은데도 아무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빠는 내게 자꾸만 요즘 돈을 많이 벌고 있다고 말한다. 거짓말이다. 투명한 그 말들을 듣고 싶지 않아서 내가 키우는 강아지가 사고 친 이야기, 요즘 책이 어느 정도 팔리는지, 따뜻했던 날씨 이야기를 계속해서 꺼냈다. 느껴진다. 아빠가 내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게.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빠는 먼저 입을 떼지 않는 게.


자주 찾아오는 공백마다 동생의 안부를 묻는다. 자신이 망친 인생을 가지고 사는 동생을 궁금해한다. “얼마 전에 대학에 가고 싶다고 울길래, 내가 돈 벌어서 보내 주겠다고 했어.”라고 했더니 아빠가 코웃음 친다. “공부를 해야 가지.” 아빠는 늘 나는 대학을 나온 사람이라서 존중해 주고, 동생은 사랑하는 만큼 무시한다. 단지 중졸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과 같은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므로. “아니야, 걔 검정고시도 높은 점수로 합격했어.”라고 했더니 “시험 붙었나?”라고 한다. 못 믿겠다는 눈치다. 속에서는 이미 ‘걔가 중졸이었던 이유는 아빠가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걔 명의로 7200만 원의 빚을 내고 스무 살에 신용불량자로 만들었기 때문이야.’라는 말을 수십 번 했다. 아빠는 기억하지 않는다. 자신이 우리 셋의 인생을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뜨렸는지.


차오르는 말들을 삼켜내느라 11,000원짜리 차돌박이 비빔밥을 싹싹 긁어먹을 때까지 무슨 맛인지 느끼지 못했다. 뚝배기에 나온 된장찌개를 동시에 손으로 잡아 들었다. 아빠와 나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후룩후룩 뚝배기에 입을 대고 마신다. 밥상 위 그릇에는 다 먹고 조각만 남은 삶은 양배추와 손도 안 댄 데친 다시마가 그대로 놓여있다. 남은 다시마를 보고 있는데 아빠가 벌떡 일어나더니 밥을 계산하러 갔다. 나는 그 쉬운 계산하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가게에서 나와 아빠의 사무실로 걸어가는 중에도 동생의 안부를 묻는다. “실패한 걸 자꾸 곱씹지 마라. 아빠 봐라, 수많은 실패를 했어도 아빠는 단 한 번도 쉰 적이 없다. 늘 도전하면서 살았지.”라는 조언을 한다. 또 속으로 생각했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지. 그랬다면 우리가 덜 고달팠을 텐데. 아빠의 당찬 도전 뒤에는 나와 내 동생의 망가진 마음의 모양과 엄마의 시린 눈물이 있었는데, 아빠는 기억하지 않는다. 그 도전 때문에 나이 육십에 혼자가 된 자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걸까.


역에 내리기 전에 아빠가 “같이 밥 먹으러 와줘서 고맙다.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나는 다신 원동에 가지 않을 거다.”라고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에서 내리는 내 손을 감싸는 아빠의 손을 봤다. 손톱에 가득 낀 보일러 기름때.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지긋지긋한 장녀 마인드. "아빠, 자주 올게. 밥 잘 챙겨 먹어. 종종 밥 먹자. "


기차를 타며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민선아, 어쩌면 가끔 아빠를 보러 올지도 모르겠어.” 내가 마흔 살이 되면 아무 생각 없이 아빠와 고기를 먹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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