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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 직업은 설명할 때 ‘그냥’이 붙는 걸까.

저는 그냥 글을 써요.

by 소운



밑미 @nicetomeetme.kr와 서울시여성가족재단 @sfwf_official에서 준비해 주신 춘천 프리랜서 워케이션에 참여했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을 연달아하면서 “나라는 사람 생각보다 괜찮은데? 능력이 많네?”라고 생각했다. 서로에게 제일 많이 했던 말은 “한국 사람들은 다 겸손해. 이렇게 말해도 다 능력자면서."였다. 왜 우리 직업은 설명할 때 ‘그냥’이 붙는 걸까.

그냥 전문적인 건 아닌데 번역해요.
그냥 글을 써요.
그냥 제대로 된 개발은 아닌데 개발자예요.
그냥 그림을 그려요.

그리고 뒤에 항상 긴 미사여구를 붙인다. 내 직업을 설명하기 위해서.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이해시키기 위해서. 나도 그랬다. [작가=글을 쓰고 책을 내는 사람]이라는 고유명사가 있는데도 자꾸만 ‘그냥 책을 냈어요. 1인 출판사를 운영하긴 하는데 진짜 출판사는 아니고요. 무슨 글을 썼냐면요. 그냥 에세이인데, 하루에 100 글자씩 썼던 거라서 대부분 짤막한 페이지들로 구성되어 있어요.’라는 문장을 완성한다. 이튿날에는 문장을 줄이는 연습을 했다.

작가라는 직업은 내가 하는 일이 맞는데도 입 밖으로 내뱉기에는 아직도 낯설다. 그래서 선택한 문장은 ‘저는 책을 냈어요.’였다. 한 문장으로 모든 게 설명이 되었고, 대화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좋았다. 2박 3일의 프리랜서 캠프를 하면서 나는 ‘직업’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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