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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llalawoman Aug 01. 2022

혼자만의 방

격리된 확진자의 은혜로운 치유의 시간

바스락바스락 바람에 부딪히는 나뭇잎 소리가 방안 가득 들어찬다.

눈을 뜨고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창문을 활짝 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창문을 활짝 열어둔 채 지내본 적이 있었을까?

바람에 나부끼는 나무를 아침 햇살이 비추는 모습부터, 해지는 찬란한 석양을 투영하는 모습까지 지켜본 적이 있었을까?


한 번도 이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없다.

오롯이 혼자 방 안에서 하루의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방문을 열고 나가면, 나의 생을 함께하는 이들이 있지만 나갈 수없다.

청소하는 소리, 식사 준비하는 소리, 공부하랴 일하랴 분주한 식구들의 소리 안에 나의 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투명망토를 입고 몰래 식구들 틈에 들어가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내가 없는 시간을 가족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내가 하던 집안일까지 맡아서 고군분투하는 남편은 어떤 마음일까? 하루가 얼마나 고단할까?'

'잔소리하는 엄마 없이 하루를 보내는 우리 딸은 엄마를 애타게 기다릴까? 아니면 마음 편히 눈치 보며 못 보던 텔레비전을 마음껏 보고 있을까?'

내가 없는 그들을 상상하면서, 하루의 시간이 지루하지 않게 지나고 있다.


혼자 방 안에서 지내고 있는 형편이지만, 나 혼자임이 얼마나 다행이고 안심인지 모른다.

지난 2년 반 동안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왔다.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에게 경험해보지 않은 전염병의 두려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기에 더 두려웠고, 그래서 남들보다 유별나게 조심하며 지냈다.

조심하는 생활이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내 사고와 행동에 경계와 위축이 습관처럼 베어 들었다.

무엇보다 내가 확진이 되었을 때, 내 주변에 끼치게 되는 피해들을 상상하면, 견디기 힘들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임에도 말이다.


언젠가 내게도 코로나가 다가오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모두가 다 걸려야 끝나는 게임 같았다.

다만, 그것이 조금만 더 늦게 오기만을 바라고 바랬다.

그리고, 그날이 내게 들이닥쳤다.


천만다행인 것은, 우리 가족 아무도 감염되지 않았고, 언제나 마스크를 쓰고 생활을 했기에 더 이상의 감염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상상한 것만큼 끔찍하게 아프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평소 편도선염과 기관지염을 자주 앓기에 비슷한 증상이어서 코로나에 감염되었다는 것을 상상하지도 못했다.

익숙한 통증들이 무언가 다름을 실감한 것은 이튿날, 새벽 칼로 베이는 듯한 근육통을 느끼면서였다.

드디어, 내게도 그날이 왔구나를 온몸으로 느꼈다.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간사한 것은, 두려워하는 일을 겪기 전에는 전전긍긍하다 막상 일이 닥치면 생각보다 의연해진다는 것이다.

지인들의 코로나 확진 소실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철렁 내려앉고 걱정되던 마음이 막상 내가 확진되니 감기 몸살을 앓는 일과 다르지 않게 덤덤해졌다.

'그렇게 철저하게 신경 쓰고 노력했는데, 결국 피해 가지 못하는구나,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구나' 싶어 그간 안절부절못하며 지내온 시간이 조금 헛헛해졌다.


하루 종일 방 안에서 생활하면서, 창문을 자주 보게 된다.

창문이 없었다면 얼마나 답답했을까, 얼마나 숨이 막힐까...

새삼 창문이 인간 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바쁘게 흘려가는 바깥 풍경에 나도 하나의 그림자가 되어 함께 하루의 시간이 흘러간다.

나 홀로 남겨진 것이 아니다. 나 역시 함께 시간 속에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참 위로가 된다.

이렇게 매일 흘러가는 시간들을 지켜볼 마음의 여유 없이 살아왔구나.

이 순간들을 내가 놓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더 애틋하게 창밖을 바라보게 된다.


전염병이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태양은 뜨고 지고, 바람은 불고 시원한 공기가 후덥지근하게 되었다 다시 상쾌한 바람으로 변화하는 하루는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다.

세상은 멈추지 않고 쉼 없이 흐르고 있다.

내 시간도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다.

거역할 수 없는 운명처럼 우리는 살아가고 있고, 또 살아내야 하기에

두려움에 더 이상 위축되어 있을 수 없다.

후련하게 털어낼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왔음에 감사하다.

이제 그만 일어서라고 시간이 내게 손 내밀어주어 감사하다.


이전에도 없었고, 어쩌면 앞으로도 없을 오직 혼자만의 시간을 오롯이 누리고

당당히 저 방문을 열고 나가리라.

다시 맞이한 세상에는 조금 더 어깨를 펴고, 두려움은 덜어내고 나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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