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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llalawoman Aug 03. 2022

감각의 일시정지 상태

미각과 후각에 대한 기록

나를 향해 돌진하는 증상들의 공격 속에서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원 펀치, 투 펀치.

맞고 또 맞고 하다 보니 머리가 멍해지고, KO패만은 막겠다는 의지도 좌절됐다.


지난 며칠간 매일 증상이 다르게 나타났다.

강력 접착제가 목젖에 붙어 억지로 떼어내는 고통이 훑고 가니,

밤새 칼로 베이는 듯한 근육통이 괴롭혔다.

나의 면역체계는 격렬하게 저항하여 바이러스를 불태워버리려는 듯 열을 뿜어내더니

이튿날, 거짓말처럼 후퇴하여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치는 통증과 목이 찢어지는 듯한 기침이 자리 잡았다.

참으로 고약하고 비열한 공격이 아닐 수 없다.

가지고 있는 모든 무기를 다 투척하여 전쟁의 막바지를 향해 돌진하는 상황이다.


오늘은 엿새째.

이 전쟁에도 적응이 되어 이제 끝나가려나 하는 참이었다.

40년을 아주 미세한 감각을 가지고 살아왔다. 타고난 천재적 감각이라고 자부할 정도로 민감하고 예민한 감각으로 살아왔다.

아픔을 느끼는 통증도 남들보다 더 크고, 소리와 냄새, 그리고 맛까지 모든 것에 증폭기를 달고 있는 사람처럼 반응한다.

이러한 감각의 발달 덕분에 도시 생활이 어려웠고, 조용하고 쾌적한 곳이 아니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야 했다.

맛의 쾌락과 좋은 향기에 쉽게 매료되며, 반대의 상황에 고통스러울 리만큼 괴롭고 심지어 아프기까지 한다.

이러한 감각은 나를 세상에 살아가기에 적합하지 않은 아주 민감하고 스트레스에 쉽게 무너지는 사람으로 성장시켰다.


민감한 감각이 버겁고 힘들 때가 많았다.

몸에서 반응하는 모든 변화를 금방 알아챘고, 그 변화를 감지했으며, 오감으로 경험하는 것들이 나의 인간관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모든 변화에 반응하는 것은 쉼 없이 재생되다 가열되어 폭발의 위험이 있는 기기와 같은 삶이다.


'다음 생애는 건강한 몸으로 조금은 둔한 성격의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 이번 생은 틀렸지만'

밤에 잠들기 전, 온몸으로 느끼는 내 몸뚱이의 부대낌과 불편함에 대한 나의 이러한 토로는 진심이었다.


이런 삶을 살고 있는 내게,

감각의 버튼이 잠시 멈춤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양치질을 하는데, 맵고 싸한 민트향이 느껴지지 않았다. 혀가 코팅이   텁텁하고 둔감해져 있었다.

작은 방에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의 냄새를 훑었다. 그 어떤 것도 냄새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미각은? 미각은 살아있을까?

격리된 방에서 가장 자극적인 미각의 존재를 찾아내었다. '커피믹스'

신기루 같은 하얀 프림 가루와 커피우유를 농축한 향의 달콤한 갈색 가루가 쏟아지면

이미 알고 있는 달콤한 맛에 눈이 커지고, 기분 좋게 쓴 뒷맛에 압도되는 그 커피믹스 말이다.

'아무 맛이 나지 않는다. 내 평생 아무 맛과 향기를 맡지 못하는 순간이 오다니.'


무언가를 판단할 때, 외형이나 질감보다 먼저 그것이 가지고 있는 냄새의 영향을 받는다.

못 생겼어도, 달콤하게 잘 익은 과즙 가득한 향을 풍기면 그것에 먼저 손을 뻗는다.

호감형의 외모를 가진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풍기는 냄새로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한다.

맛있는 음식도 충족 조건은 먼저 냄새이다. 냄새로 먼저 먹고 난 후 맛이다. 그리고 재료들의 질감이 그 음식의 맛을 결정한다.


그런데, 냄새와 맛이 사라졌다.

밥을 먹어도 냄새로 먼저 먹고, 맛을 느끼고 질감을 느꼈던 그 순서가 아닌.

아무 맛도 향도 없는 음식의 질감만을 느끼고 있다.

'맛을 가지지 않은 매움이라는 것이 이런 통증이었구나. 고소함이라는 것이 사라진 두부의 질감이 이런 것이었구나.'


이상한 나라 앨리스에 온 것만 같다.

나의 감각을 사라지게 만드는 방에 들어온 것이다. 하얀 토끼 아저씨를 따라왔을 뿐인데.....


상상해본 적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 내게 들이닥쳤다.

이륙하는 비행기 속에 있는 것처럼, 귀와 머리가 멍하다,

후각과 미각마저 무의 상태가 되니 마치 연못에 부유하는 부레옥잠이 된 것만 같다.

잎자루가 공처럼 부풀어 공기를 머금도 떠다니 듯이, 내 머릿속에 공기가 가득 차 공기 중을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다.

무중력 상태에 들어가면 이런 기분일까?


감각이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과 동시에 멈춤이 주는 평온의 상태가 생경한 감정이다.

부대끼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기분과 동시에 무언가 생략된 감각을 느끼고 있는 지금.

너무 혼란스럽다.

때로는 나에게 쾌락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고통을 주기도 하는 감각의 일시 정지 상태.

후각과 미각이 사라진 지금, 평온함을 얻고 쾌락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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