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랍어 선생님

by rallalawoman


나의 아랍어 선생님은 지금, 한국에 살고 있다.

나의 선생님은 한국어를 전공했고 정말 열심히 한국어 공부를 하여 기가 막히게 한국어를 잘한다.

나는 요르단에서 아랍어를 공부하고 있지만 부끄럽게도 아랍어를 잘하지 못한다.


선생님은 근무시간보다 두 시간 빨리 출근해 한국어 공부를 하고, 퇴근 후에도 한국어를 공부했다.

한국에 관한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그 일에 진심을 다했다.

한국에 가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었다.


그녀를 보면 무엇이라도 될 것만 같았던 그 시절의 내가 보였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일들을 현실에 옮겨내던 나의 20대가 보였다.

선생님과 학생으로 만났지만 20대의 청년과 40대의 아줌마의 관계이기도 한 우리는 긴 세월의 차이가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그녀에게 내가 20대 시절 열심히 읽던 에세이책들을 선물했었다. 그때 그녀는 예상하지 못한 선물에 돌고래 소리를 토해내며 기뻐했다. 그녀는 ‘이토록 귀한 것들’이라며 그 책을 진심으로 좋아했다.

책을 품에 안은 그녀의 벅찬 표정을 보았을 때, 나의 영혼이 20년 전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그 시절의 나 역시 그녀에게 전한 책들로 위로받고 꿈을 꾸었었다. 마치 제목처럼 ‘지금 내가 아픈 것은 청춘이기 때문이야, 지금 미처 알지 못하는 것들은 당연한 거야’하며 스스로를 다독였었다.


한국 책을 구하기 어려운 요르단에서 한국어로 쓰여진 그 책들은 그녀에게 꿈 그 자체였다.

20대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글들은 아마도 꿈의 불쏘시개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2년이 지난 지금, 한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다. 그녀는 한국행의 꿈을 이루었다.


어느 날 우연히 접한 그녀의 한국행 소식에 거실에 널브러져 있던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다고, 내가 한국에 오면 꼭 만나고 싶다는 그녀의 메시지.

“한국이라고? 지금 한국에 있다고? 끝내 갔구나! 끝내 해냈구나!” 탄성이 절로 나오고 내 심장이 날뛰었다.

기쁜 소식에 흥분한 나는 그녀에게 너무 자랑스럽다고, 한국에 가면 꼭 만나자고, 내가 꼭 맛있는 거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녀의 파안대소할 때의 표정과 목소리가 생생하게 그려졌다. 농담과 장난을 좋아하던 개구쟁이 같던 그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꿈꾸던 곳에 도달한 마음이 어떨까? 상상만 하던 곳을 실제로 들어선 기분을 어떨까?

어떤 공부를 하게 될까? 그녀는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무엇을 경험하게 될까?

생각이 줄줄이 엮여서 화수분처럼 넘쳐났다.

‘아, 젊음이 좋구나! 아, 정말 기특하다. 정말 장하다.’

나의 선생님이 이뤄가는 꿈들에 나는 대리만족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요르단에서 한국행을 꿈꾸고 실패하고 좌절하며, 또다시 꿈꾸던 시간을 보았기에 그녀의 한국행은 마치 한 사람의 성장드라마를 본 것만 같았다. 주인공의 성장을 보면서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듯 가슴 졸이고, 때로는 벅찬 감정을 느끼는 관객이 된 것만 같았다. 나는 그녀의 꿈과 함께 하늘을 날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언제나 클라이맥스는 찰나이듯 나의 감동도 이카루스의 결말처럼 현실에 추락했다.


그녀는 요르단 사람임에도 한국에 있는데, 한국인인 나는 왜 이곳에 있는가?

분명 한국인은 나인데, 나는 왜 그곳에 가지 못하는가?

불현듯 닥친 현실 인식에 서러운 눈물이 흘렀다.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로 이곳에서 사는 일은 너무도 감사한 일이지만, 오롯이 나 자신만 생각한다면 요르단의 삶은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답답하고, 마음의 생채기들로 쓰라린 곳이다.


외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환대와 조롱 그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존재이다. 때로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환대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끈질기게 쫓아오는 요르단 아이들의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어를 쓸 곳이라곤 가족과 지인들 뿐이고, 아직도 친해지지 못한 영어와 아랍어를 섞어가며, 온전하지 못한 유아적 발화를 하며 살아간다.


말이 나의 무기였고, 말이 나의 목숨줄이던 날들이 있었다. 남을 설득하고, 어르고, 때로는 전투를 치르던 시기에 말은 나의 밥줄이었다. 그러던 나는 말을 멈추는 순간이 더 길고, 차라리 말을 포기하는 순간이 늘게 되었다. 모국어를 잃고 꾸역꾸역 남의 언어를 뱉어내며 살아온 지 십여 년이 흘렀다.

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한 세월이 길어지니, 머릿속의 생각은 더 많아지고, 마음속에 솟구치는 말들을 다시 삼켜야 했다. 아마도 당장 죽게 되면 내 몸속에는 사리가 나올 것임이 분명하다.


필요한 말들만 하며 지내던 어느 날, 요르단의 한 카페 청년이 “한국 사람이에요? 요르단에 온 지 얼마나 됐어요? 저는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어요.”라며 먼저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정확한 발음과, 유창함에 당황한 나는 대답하는 일마저 말을 더듬어버렸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고 부끄러웠다. 요르단에서 산지 7년 차가 되던 때에 아랍어 글자를 조금 배웠을 뿐, 아랍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상태였다.


요르단에 사는 그 청년은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인인 내게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는데, 요르단에 산지 7년이 된 나는 아랍어 인사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는 호기심을 잃은 게으르고 나태한 외국인이었다.

‘아니, 저 청년이 한국어를 하는 것처럼 나라고 아랍어를 하지 못한 법이 어디 있어? 왜 나는 지금껏 이들의 말을 배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까? 말이 한계라며 왜 스스로를 가두었을까?’


그날 집으로 돌아와 조갈난 사람처럼 허겁지겁 아랍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 바로 수강등록을 하였다. 그리고, 그녀를 그곳에서 만났다.

한국어를 기가 막히게 잘하는 아랍 선생님을 만난 것이다.


카페 청년이 쏘아 올린 공으로 인해 나는 아랍어를 배우게 되었고, 지금도 배우고 있다. 그럼에도 아랍어는 여전히 미숙하고 도무지 늘지 않는 실력에 한숨이 새어 나온다. 아랍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도무지 부끄러워 말할 수가 없다.

‘나는 언어에는 재능이 없나 보다, 공부를 너무 설렁설렁했구나, 연습을 하지 않으니 이 모양이지... ’하며 온갖 핑계를 열심히 늘어놓고 있다가 선생님의 한국 생활 소식을 보게 되면, 또다시 머리가 찌릿찌릿해진다. 정신 차리라는 마음 속 잔소리가 귓가에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그녀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지도, 최선을 다하지도 못한다. 나의 선생님이 품은 꿈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꿈을 품은 그 마음처럼 내 마음속에도 무언가 싹이 트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한국어를 잘하는 요르단 청년들처럼 잘 해낼 수 없겠지만, 아랍어를 서툴게나마 할 줄 아는 한국인으로는 살아갈 수 있다고, 작은 용기를 감히 품어본다.


되는 것도 없지만, 안 되는 것도 없다는 요르단에서 이를 바득바득 갈게 만드는 아랍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로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주고 때로는 외국인의 어눌한 아랍어에 용기를 북돋아주는 친절한 사람들이 있는 이곳에서 인류애를 경험하고 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훗날 한국에서 아랍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의 언어로 그들을 위로해 주고 응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아랍어 선생님이 한국에서 겪을 일들이 여기에 사는 나처럼 때론 아프고, 쓸쓸하고 쓰라리겠지만, 결국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나도 이곳에서 시간이 결국, 좋은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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