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의 전설〉을 보고(주요 내용 포함)
대단한 폭풍이 치는 밤이었어요. 비바람이 수면을 때리고 천둥번개가 심해까지 찔러대니 바다도 성이 잔뜩 난 거였죠. 검은 파도가 만들어낸 하얀 거품 고래 수십 마리가 배를 집어삼킬 듯 에워쌌어요. 도저히 몸을 가눌 수가 없어서 기어 다니다가 복도 끝까지 미끄러져 처박히고 말았어요. 신사 숙녀들의 구두가 뒹구는 선실에서 난 속을 게워내며 눈물을 쏟고 있었어요.
이 난리통에 멀쩡한 사람이 있다는 게 믿어져요? 말쑥한 차림의 남자가 피아노에 앉더니, 자기를 믿고 피아노의 잠금쇠를 풀라지 뭐예요.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는 그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어요. 흔들리는 진동을 몸에 담았다가 손끝으로 발산하듯 그의 손가락이 건반을 때리자 처음 듣는 음률이 나를 휘감았어요. 피아노가 왈츠를 추기 시작하더니 멀미는 온데간데 없어졌죠.
바로 그였어요, 배에서 태어났다는 피아노의 천재가.
육지는 내게 너무 큰 배고
내가 연주할 수 없는 음악이야.
좋은 이야기는 낡은 트럼펫보다 가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