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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Oct 04. 2022

청각적 공감에서 피어난 연민과 사랑

〈나의 아저씨〉와 〈또 오해영〉을 보고


박해영 작가가 집필한 드라마를 내리 보았다. 〈나의 아저씨〉를 시작으로 〈나의 해방일지〉를 거쳐 〈또 오해영〉까지. 세 드라마의 유사성은 깊은 고독과 말할 수 없는 고민을 가진 인물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 인물이 내면의 비밀을 모조리 들킨 대상과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 주요 플롯이다.


와 함께 〈나의 해방일지〉를 제외한 두 작품에서 '소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공통점에 주목하고 싶다. 작가가 인물들의 관계 설정에서 '듣기'를 모티프로 삼은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시각이 아닌 청각을 이용해서 상대를 관찰하는 방식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긴 시간에 걸쳐 어진 경청은 어떤 효과를 낳았을까?




〈또 오해영〉에서 두 인물은 이름을 매개로 만나게 되지만 이 둘이 가까운 사이가 된 건 소리를 통해서다. 소리에 민감한 음향감독 도경(에릭)과 해영(서현진)은 가벽을 사이에 두고 이웃이 된다. 온갖 생활 소음을 들으며 도경은 생활 습관에서부터 무엇을 하는 중인지, 심지어 혼잣말로 내뱉은 속마음까지 해영의 거의 모든 것을 알게 된다. 〈나의 아저씨〉에서도 지안(이지은)이 동훈(이선균)을 도청하면서  그의 외로움과 말못할 괴로움, 그리고 사람됨을 알게 된다.



시각 정보는 주관적으로 수용하면서도 객관적이고 의심할 필요가 없는 정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큰 반면 청각은 모호함이 커서 확신보다는 추측이 필요한 정보다. 그러므로 소리를 정보화하려면 보다 주의를 집중해야 하며 판단은 유보된다. 비어있는 정보의 영역을 상상력으로 채우면서 낭만적이고 자극적인 효과가 발생되기도 한다.


눈은 다른 존재에 대한 주관적이고 피상적인 관념을 가져다주지만, 귀는 다른 존재들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듣기 시작하면 대화가 되고 소통이 된다. 하지만 눈은 그렇지 못하다. (...) 눈으로만 맺은 관계에서는 오해와 불신이 생긴다.

- 서정록, 《잃어버린 지혜, 듣기》


사람은 낯선 대상을 인지할 때 주로 시각을 활용한다. 인간의 두뇌에는 시각인지체가 청각인지체보다 30배나 많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러나 시각은 의지가 필요한 감각이다. 타인을 관찰할 의지도 관심을 둘 여유도 없절망의 나날을 보내던 도경과 지안은 공허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런 인물들이 '듣기'라는 마법을 통해 변화되는 과정은 놀라웠다.



두 드라마에서는 '몰래 듣기'를 통해 꾸며지거나 걸러지지 않은 그대로의 대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도경과 지안은 혼자만 힘들고 외로웠던 게 아니었다는 사실로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상대가 자신에게 품은 진심어린 호의를 확인하고 더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청각을 통해 타자를 관찰하는 일은 자기반성으로도 이어졌다. 도경은 원하는 바를 솔직히 털어놓는 해영의 용기를 마주하면서 자신이 내면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지안 신의 고통은 감내하면서 타자의 아픔에는 행동하는 동훈해 도움을 주고받는 법을 배다.



진심으로 들어주는 일는 타자 이해의 출발점이다. 상대를 온전히 이해하니 연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연민의 감정은 자연스럽게 호감으로 이어 수 있었 것이다.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처럼 기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의 마음을 여는 열쇠, 절망과 고독을 깨뜨린 망치였으며 삶의 의지를 일깨우기도  마법이었다.




인용한 글 : 《잃어버린 지혜, 듣기》 서정록 지음, 샘터 펴냄

Photo : tvn.tving.com/tvn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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