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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Aug 25. 2022

이미 가졌으나 알아채지 못한 무성함

영화 〈자산어보〉를 보고(주요내용 포함)


이준익 감독이 각본을 쓰고 만든 영화 〈자산어보〉를 보았다. 1801년, 순조 1년에 천주교도로 신유박해를 당해 유배를 떠난 형제 정약용(류성용)과 정약전(설경구)의 이야기였다.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유배지에서 쓴 해양생물학 · 수산학 책으로, 정약용이 쓴 관리의 소임과 덕에 관한 《목민심서》와 대비되며 형제가 품었던 사상과 삶의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정약용은 처가가 있는 강진으로 유배를 가서 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집필 활동을 하였으나, 더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힌 정약전은 땅끝마을 해남에서도 물길로 한참을 더 들어가는 흑산도에 유배된다. 두 형제가 헤어지는 장면에서 정약전의 앞길에는 산도 바다도 뿌연 안개만이 자욱하다. ‘죄인이니 잘해줄 것 없다’는 흑산도 관리의 첫마디도 험한 그의 앞날을 예고하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가거댁(이정은)은 ‘나라의 죄인이나 우리 집 손님’이라며 정약전을 환대한다. 그러면서 소나무 한 그루에도 세금을 물리는 나라 법을 고쳐 달라 그에게 요청한다. 한편 약전은 어류학에 해박한 창대(변요한)에게 산 지식을 배우고자 했으나 죄인에게 잘해줄 수 없다는 선입견에 부딪친다. 이에 창대가 좋아하는 글공부와 바다에 대한 지식을 교환하자고 청하며 관계를 맺는다.


호기심 많은 인간에게
낯선 곳만큼 좋은 곳이 어디 있는가


그리하여 약전과 창대는 서로에게 자극이 되고 도움을 주는 친구가 된다. 약전은 실학자이자 현실주의자로서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고 ‘애매하고 끝 모를 사람 공부 대신, 자명하고 명징한 사물 공부에 눈을 뜨기로’ 한다. 낯설고 희망 없는 곳에 유배를 당했어도 무언가 하고자 하는 의욕과 마음을 나눌 친구 스승이 곁에 있다면 살만한 삶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카메라의 앵글과 프레임은 인물들의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양반들은 닫힌 방 안에 있고, 가거댁 창대는 앞뒤가 뚫려 있어 너른 바다가 보이는 마루에 주로 자리한다. 이 사이를 수직의 굵은 기둥이 가르고 있서 인물들은 서로 시선을 맞출 수가 없다. 그러다가 사귐이 깊어진 물들 마당의 들마루에 둘러앉 장면은 분리되었던 공간이 통합되신분의 계가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당시로서는 파격이었을 여성의 인권과 역할에 대 논의가 오가기도 한다.


약전과 창대가 함께 할 때면 제 공부를 먼저 가르쳐 달라고 아우성이다. 그 모습이 흐뭇하긴 하나 결정적인 차이가 눈에 보인다. 바로 시선의 방향이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큰 한양에서 작고 외진 흑산도로 하향한 약전은 오로지 바닷가와 바닷속, 즉 아래만을 바라보고 창대는 희망도 가치도 없는 어촌을 버리고 책을 통해 건너갈 육지로 시선이 향해 있다. 이 차이는 결국 갈등을 만들고, 서자인 창대가 양반 아버지를 다리 삼아 섬을 떠나 벼슬을 하면서 둘은 헤어진다.



이야기는 두 인물의 삶에 배어 있는 많은 사회 문제를 말하고 있다. 조세제도, 관리들의 서민 착취, 성리학의 무용성과 주자학의 맹목성, 실학을 향한 편견, 종교의 자유, 신분제도에서 기인한 갈등, 양반도 평민도 아닌 서자의 정체성 등 온갖 사회 문제와 개인이 이루고자 하는 자아실현 의지가 충돌하면서 그 폐해는 가장 힘없는 개인에게 지워진다. 이 모든 것을 경험한 창대는 결국 뜻을 접고 다시 고향으로 귀환한다.




내내 흑백이던 영화는 몇 장면에서만 색을 입는다. 별이 빛나는 바다 성게알에서 태어나는 어린 새 그리고 창대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장면에서다. 앞선 두 장면의 푸른색은 희망을 상징하며, 창대가 육지를 버리고 귀향할 때 섬은 초록빛의 제 색깔을 되찾는. 희망 없던 시절에 흑산도(黑山島) 불렀던 섬은 정약전의 책 제목처럼 무성할 자玆를 써서 자산도(玆山島)가 된다. 그제야 이 영화가 약이 아닌 창대의 시선과 관점에 의해 그려졌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다른 곳을 바라보느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으나 가치를 알고 나서야 제 색을 되찾은 섬을 보면서, 삶의 기쁨과 희망 가까운 곳에 있다는 진리를 새삼 느낀다. 그렇다면 내가 가졌으나 알아채지 못한 , 나의 흑산과 자산은 무엇까. 까지 몰두할 나만의 과업은 또 어떤 것일까. 가지지 못한 것을 탐하지 않고 내 발 밑의 보물들을 발견하기 위해, 의미를 캐내고 재미를 북돋으며 오늘의 삶을 살아 보자고 다짐한다.




Photo : movi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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