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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Aug 08. 2022

서로에게 구원이 될 수 있으려면

〈나의 해방일지〉를 보고


불행한 가정이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는 레프 톨스토이의 말은 개인에게도 적용된다. 아무리 빛나 보이거나 평범해 보여도 각자의 삶은 나름의 이유로 고단하다. 일상의 불행은 나아질 기미도, 극적인 반전도 기대하기 힘들기에 삶을 옥죄고 힘도 의지도 앗아간다. 그 고단함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지금껏 내가 읽어온 책 속 고난과 불행들은 언제나 극복되기 위해 존재했다... 그러나 일상의 불행은 결코 쉽게 극복되지 않으며, 아주 길게, 어쩌면 평생 동안 비슷한 방식으로 반복되기도 한다.


이야기 속 삼남매의 공통적 불행거 환경으로 인한 불편으로부터 기인한다. 남들과는 다르게  출퇴근길이 힘들고, 퇴근 후의 저녁을 남들처럼 즐길 수 없고, 즐길 수 없음을 이해하지 못할 이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게다가 휴일에도 끝없는 농사일을 도와야 한다. 


보다 근본적이고 개인적인 불행의 이유는 염기정의 경우 아무도 자신을 좋아해 주지 않는 것이었고 염창희와 염미정은 지지부진하거나 나쁜 사랑이 끝나버린 것 그리고 일터에서 발생하는 인간관계의 괴로움 때문이었다.


이들의 불행은 대도시에서 출퇴근하며 똑같은 일상을 살아야 하는 직장인들이 겪는 평범한 불행과 닮아 있어서 더 공감을 얻다. 참 이상하다. 어떨 때는 아무 일이 없는 것이 행복이었다가, 또 어느 때는 아무 일도 없어서 불행하다. 행과 불행은 이토록 상대적이어서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했을까.



인간관계가 불행의 이유라면 그것은 또한 행복의 이유도 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불행이 지겨워진 그들은 뭔가 바꿔보기로 결심한다. 누군가는 지겨운 삶에서 해방되기 위해 아무나 사랑하겠다고 선언하고, 누군가는 무조건적인 지지를 주고받을 사람을 만들고자 한다. 시도는 무모해 보였고 그 과정도 결코 쉽지 않았으며 또 다른 고됨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러나 적어도 똑같은 불행에 붙들려서 시들지 않을 수 있었다. 시도는 가능성을 일으키고 가능성은 변화를 잉태한다.


세상 달라진다. 아무 관계도 없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스며들며 일상 조금씩 변화한다. 불행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이 만나 행복해지는 마법, 그 화학작용이 놀랍다. 모든 상황은 그대로인 채 사람 하나가 마음에 들어왔을 뿐인데, 희망 없이 구겨졌던 삶이 관계라는 햇살을 머금고 판판하게 펴진다. 하루에 5분이라도 설레는 일이 생긴다면 그 하루는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었다.



나 미쳤나 봐.
내가 너무 사랑스러워.


성장한다는 건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며, 세상은 나에게 별 관심이 없다는 걸 알아가는 것이다. 더불어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성숙하다는 건 그럼에도 마음을 다치지 않고 자신을 다독이는 사람이 되는 것, 작은 존재여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듯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도 있으며 그런 사람을 발견하려면 먼저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한때는 나 싯다르타가 지혜롭다고 착각했지만, 다시는 그런 착각을 하지 않으리! 그러나 내가 한 일 가운데 잘한 일, 마음에 드는 일,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 하나 있으니, 바로 스스로를 증오하는 일을 그만둔 것, 어리석기 짝이 없고 황폐한 삶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싯다르타, 그대를 칭찬한다. 그토록 여러 해 동안 어리석은 세월을 보내고도 그대는 다시 생각해 뭔가를 해냈고, 가슴속에 있는 새의 노랫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따랐구나!




'추앙'이라는 낯선 단어에 매혹되었겠지만 이는 사랑을 시작할 때 기본 바탕이 되는 절대적인 지지 또는 숭배, 그리고 서로 간의 환대의 다른 말이다. 다만 다른 사랑과 달랐던 것은 사랑을 고백(또는 예고)한 뒤 애타게 응답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가 할테니 너도 해'라는 당당한 자신감이다. 즉, 염미정은 구씨가 응답하지 않았어도 누구와도(그리고 자신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거다.


실제라면 고백에 응답했을지라도 '추앙 아까 했다'라며 생색을 낸다거나 언제 폭력적으로 변할지 모른다고 예고하는 남자를 절대적으로 지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염미정에게 의미 있었던 건 그동안 만나온 나쁜 남자로 인해 바닥난 자존감을 구씨를 만남으로써 한껏 끌어올릴 수 있었다는 것. 그러므로 이 둘은 헤어진 뒤에도 아플지언정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자기 해방에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다면 것은 자기 객관화, 즉 글쓰기다. 염미정과 동료들은 〈해방 클럽〉에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고 객관적인 진단을 내리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할 수 있었다. 드라마에서는 어떤 해피엔딩도 제시하지 않았지만,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그 하나의 행위만으로도 삶은 보다 충만질 수 있고, 채우다 못해 넘쳐흘러 다른 이의 삶까지도 적셔줄 수 있다는 것을 보았다.


사랑을 받기 시작하면 우리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새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타인의 사랑은 질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이 질문과 더불어 내 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서서히, 어떤 일이 벌어진다.



인용한 글 :

1) 《1차원이 되고 싶어》 박상영 글, 문학동네 펴냄

2)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글, 권혁준 옮김, 문학동네 펴냄

3) 《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글, 마음산책 펴냄



Photo : mtv.jtbc.co.kr <나의 해방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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