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달리 Nov 21. 2022

글쓰기의 존재론과 노후대책

고미숙,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를 읽고


글을 잘 쓰고 싶은 욕구를 반영하듯 글쓰기 책 여러 권 읽었다. 이태준의 《문장강화》, 배상문의 《창작과 빈병》, 강원국의 《대통령의 글쓰기》, 유시민의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김정선의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이원석의 《서평 쓰는 법》, 은유의 《쓰기의 말들》, 박종인의 《기자의 글쓰기》,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이상원의 《서울대 인문학 글쓰기 강의》, 헤르만 헤세의 《헤세의 문장론》, 유선경의 《어른의 어휘력》까지.


이렇게 흡입하듯 글쓰기 책을 읽었음에도 잘 이어지지 않는 글을 붙들고 고민할 때마다 문득문득 치밀어 오르는 근본적인 질문은 계속되었다. 이 많은 글쓰기 관련 책들은 대부분 글쓰기 방법론에 대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떻게 쓸 것인지를 논하기에 앞서 왜 써야 하는지를 매번 스스로에게 묻고 늘 다시 답을 찾아야 하는 과정, 이 번거로움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 준 책을 비로소 만다.




고미숙 작가는 고전문학을 전공하며 엄숙한 글쓰기를, 문학비평을 하면서 공격적인 글쓰기를 다고 자평했다. 그러다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만나고 글쓰기 공동체를 시작하면서 글쓰기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다시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정되지 않은 영역과 틀에 얽매이지 않은 방식의 글쓰기를 고민하다 보니 문학 텍스트라는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공부와 글쓰기의 범위 삶과 사람으로까지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누구의 명령에 따라 일하고 싶지 않다”라는 신조를 기반으로 삶의 비전을 선택하기로 했고, 그것이 가능한 유일한 글쓰기임을 발견했다고 하였다. 그의 신조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쓴 사사키 아타루의 "누구의 부하도 되지 않았고 누구도 부하로 두지 않았다”라는 문장을 떠올리게 했다.


텍스트를 읽고 쓰는 것이야말로 모든 혁명의 근원이라고 했던 사사키 아타루처럼 고미숙 작가는 글쓰기 자유로운 삶을 보장하는 방법이자 세상 만물과의 만남을 이어주는 매개 정의했다. 글쓰기야말로 가장 공정한 영역이며, 그러므로 글을 쓸 때 필요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삶과 사람과 사물과 앎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 그리고 질문이라고 하였다.


사물을 ‘처음처럼’ 만나고, 매 순간 차이를 발명해 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을 서로 연결할 수 있는 것, 이것이 글쓰기의 동력이다.




고미숙 작가를 몰랐을 때,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다가 의문이 생겨 검색을 했다 커뮤니티의 게시물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누군가 이 책에 등장한 미술 작품들을 1권부터 8권까지, 장면별로 찾아 정리해 놓았던 것이다. 그 사이트 이름이 ‘수유너머’였다. 독특한 이름과 방대한 자료를 보고 도대체 뭘 하는 곳인지 궁금했는데, 이제야 의문이 풀렸다. 그 공간이 고미숙 작가가 운영하는 지식 공동체였다.



지금껏 글쓰기와 공부는 외로운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같은 주제를 다룬 글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웠고, 함께 공부하거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귀했다. 소극적인 나와는 달리 고미숙 작가는 직접 지식 공동체를 만들 그들과 함께 꾸린 지식의 텃밭에서 향연을 펼쳐왔다는 것이 부러웠다. 복잡하 고민할 것 없이 ‘잘 모르면 배우면 되고, 좀 알면 가르쳐 주면 된다’는 것 그의 철학이었다. 더불어 그는 이런 주장을 더했다.


우정과 지성의 네트워크,
이것이 모든 이들의 노후대책이어야 한다.


이 얼마나 멋지고 설레는 말인. 안 그래도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노후 준비 좋은 텍스트와 이야기를 공유하는 관계이자, 질척대고 으르렁대고 또 화해하며 의지할 수 있 친구들이라고 생각했던 요즘이었다. 지성이 결합된 우정의 밀도가 얼마나 깊으며, 앎의 기쁨을 아는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는 얼마나 농밀할. 서로에게 주는 자극이 쉼 없는 동력으로 작용하여 읽고 쓰는 삶을 영위는 먼 날을 흐뭇하게 상상해본다. 




책 정보 :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고미숙 글, 북드라망 펴냄


Photo : pixabay.com & @especially

매거진의 이전글 책 추천, 주는 어려움과 받는 즐거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