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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Nov 14. 2022

책 추천, 주는 어려움과 받는 즐거움


독서를 즐기고 목록을 정리해두는 나의 습관을 아는 지인들은 종종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고 요청을 해온다. 그럴 때마다 매번 책 추천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고 느낀다. 요청하는 사람들은 가볍게 부탁하는 것이지만 내겐 매우 어려운 숙제와도 같다. 좋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너무 다르니까.


책을 추천하려면 알아야 할 요소들이 있다. 책을 읽을 주체의 독서 이력과 수준을 파악해야 하고 성향과 관심사도 중요한 정보가 된다. 현재 어떤 고민을 갖고 있는지 안다면 시기적절한 책을 권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개는 사전 정보 없이 '아무거나 괜찮다'는 말을 덧붙이며 요청을 해온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그 책이 당신에게 얼마나
 강한 펀치를 날리는가 하는 점이다.


구스타프 플로베르의 말처럼 당사자에게 강펀치를 날리고 싶지만, 강펀치를 맞추기 위해 링 위에 올라가도록 이끌 수 있는 책이어야 한다. 책을 자주 읽지 않는 분이라면 독서에 흥미를 유발하는 책을 소개하고 싶고, 즐겨 읽는 분이라면 또 그에 걸맞은 신선한 책을 권하고 싶은 욕심이랄까. 그러므로 아무거나 좋다는 말을 의심하면서 탐문 수사와 추리를 시작한다.



먼저 선호하는 장르나 작가가 있는지 물어보면, 대개는 특별히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렇다면 감명 깊게 읽은 책이나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이 무엇이었는지를 묻는다. 그러면 순간 멈칫하는 반응을 보인다. 더듬더듬 기억을 뒤지는 과정이므로 시간을 두고 답을 기다린다. 그렇게 단서를 얻고 나면 나의 독서 목록을 파헤칠 차례다.




최근에 받은 부탁은 편하게 읽기 좋은 소설책을 골라 달라는 지인의 요청이었다. 어떤 분야를 선호하는지 물으니 역시나 다 좋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흐음... 그럼 인상적인 책은 무엇이었냐고 물으니 8년쯤 전에 화제가 된 역사소설 제목이 나왔다. 그로써 어느 정도의 취향과 마지막 독서 시점을 유추할 수 있었고, 너무 무겁지 않은 국내 소설을 골라 선물해드렸다.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요청은 한 어르신께서 예비 며느리에게 선물할 책을 추천해달라는 것이었다. 독서 주체의 성별과 상황 말고는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질문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르신의 마음을 외면하지 못해 반나절을 끙끙대다가 추천한 책은 백수린 작가의 에세이 《다정한 매일매일》이었다. 내용도 달큰했지만 덕담을 건네는듯한 제목과 고운 표지가 한몫을 했다. 추천을 요청한 분과 책을 선물 받을 두 분의 마음에 들었을지는 의문이지만.



다음으로, 매년 사내 독서경영을 위한 필독서 선정 요청이 온다. 이 역시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연간 독서 목록을 살피고 살펴도 마땅한 책을 고르기가 어렵다. 다수의 사람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어야 하고, 독서 토론을 하기에 적합해야 하며 분야도 다양해야 한다. 기존에 추천한 도서나 선정된 도서들을 제외해야 하니 범위는 올해에 읽은 책으로 한정된다. 한편 기존 필독서의 반응도 살펴야 한다. 출간 시점도 되도록 최근이면 더 좋겠다는 조건도 붙는다. 이러한 요소들을 고려하여 두통을 겪으며 올해에 추천한 책들은 다음과 같다.




[자연과학]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인문] 믿는 인간에 대하여 / 한동일


[인문] 공부란 무엇인가 / 김영민

"배우는 사람은 자포자기하지 않는다." -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기 위해 우리가 갖춰야 할 자세를 일깨우는 성찰적이고 철학적인 책


[인문] 인간으로 사는 것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 김영민

"삶이 쉽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타인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게 인생이라는 데 있다." - 세상에 정치 아닌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정치인에게 열광하거나 혐오하는 대신 정치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게 하는 책


[인문]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김지수


[소설] 연애소설 읽는 노인 / 루이스 세풀베다


[에세이] 책, 이게 뭐라고 / 장강명

말하고 듣는 사람이 아닌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법, 읽고 쓰는 일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고찰하는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이야기




반면, 내게 책을 추천하는 지인들은 나를 잘 아는 분들이라서 대체로 적중률이 높은 편이다. 최근에는 추리 소설을 추천받아 읽고 있고, 도서관 담당 동료에게 추천받은 정지아 작가의 책 《아버지의 해방일지》도 반납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닿지 못했던 분야와 작가의 책들을 만나 독서 지평이 넓어지는 과정이 즐겁다.


브런치도 책 소개에 최적의 수단이어서 이미 여러 작가님들께 알게 모르게 추천을 받았다. 《칵테일, 러브, 좀비》,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읽거나 말거나》, 《환상의 빛》, 《암과 살아도 다르지 않습니다》,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등을 읽으며 독서 영역이 확장되었다. 현재는 몆몇 작가님들의 영향으로 고미숙 작가의 글쓰기 책을 읽고 있으며 읽어야 할 목록에 올려둔 책들도 보물처럼 남아 있다.



책 속에서 배어 나와 내게 고인 말들이 흘러넘치면 서평으로 책을 소개한다. 애정하는 책일수록 다른 분들의 생각과 느낌이 궁금해져서 널리 알리고 싶다. 같은 책을 읽고 어떤 생각과 느낌이 들었는지, 어떤 충격을 받았는지, 어떻게 반성하고 변화했는지 교환하는 과정이 즐겁다. 쉽지는 않지만, 내가 받은 만큼 누군가에게도 독서가 주는 위로와 기쁨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면서 책을 고른다.




Photo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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