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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Apr 22. 2022

부유한 삶이란 이야기가 있는 삶이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고


한 달 남짓 된 브런치에서 서평으로 벌써 세 번째 부고를 전하는 것이 두렵고 무거워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은 감상을 한동안 적을 수가 없었다.


어떤 이를 글로 만난다는 건 직접 들을 수 없는, 깊고 오랜 이야기를 마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뒤집어 말하면 긴 기간 대면한 사이라도 속 깊은 말을 나누기 쉽지 않으며, 본질을 쉬이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어령 선생님과 김지수 작가의 대화는 다르게 느꼈다. 가슴까지 차오르는 죽음을 맞이하며 두 사람이 나눈 이야기는 이어령이라는 본질이자 진수, 정수로 다가왔다.




그동안 시보다는 시 비평을 읽곤 했다. 혼자 읽기 어려운 시를 제대로 읽어줄 인도자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언어로 세운 집》을 통해 이어령 선생님을 만났다. 첫 시는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였다. 교과서에 실리고 노래로 불리며 더욱 흔해진 시. 무엇을 더 발견할 수 있을까 싶었던 나는 그가 캐내 펼쳐 보이는 의미의 향연에 어지러움을 느꼈다.


‘살자’라는 기호에서 상실과 구애의 의미를 풀어내고 ‘뜰’과 ‘뒷문 밖’에서는 민족 정서에 어린 배산임수의 풍경을 보고, ‘엄마야 누나야’라는 호칭에서는 모태 공간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읽어내는 과정은 교과서적인 풀이가 아닌 한 인간이 문학을 예우하고 예술을 동경하는 진실한 태도였다.



대체 이름이란 무엇인가. 이름을 뜻하는 한자의 名(명)은 저녁 夕(석) 자에 입 ‘口(구)’ 자를 붙여놓은 것이다. 낮에는 손짓으로 부를 수도 있지만, 땅거미가 지는 저녁에는 입으로 부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입으로 부르는 것이 바로 이름이다. 아담이 그랬듯이 시인은 이름을 짓고 그것을 부르는 사람이다.
- 《언어로 세운 집》 중에서


그는 흔하디 흔한 단어 하나를 가지고도 보편적인 삶의 양식과 숙명이 담긴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이런 글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와 같은 글을 볼 때면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그가 젊은이들에게 당부한 짧은 한 마디가 새삼 와닿는다.


덮어놓고 살지 마세요.


그의 이 말을 당연한 것에는 성찰이 없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죽음이란 내 삶 언저리에는 없다는 생각, 그래서 오늘 내 하루가 당연하다는 마음가짐, 어제와 똑같은듯한 일상, 누군가 만들어낸 말들 속에서는 무엇도 발견할 수 없다. 그는 평생을 관찰하고 관계를 맺어왔다고 했다. 그랬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글을 쓸 때 나는 관심, 관찰, 관계... 평생 이 세 가지 순서를 반복하며 스토리를 만들어왔다네.
관심을 가지면 관찰하게 되고 관찰을 하면 나와의 관계가 생겨. (...) 젊었을 때는 관심이 최우선이었어. 사오십대 되니 관찰을 알겠더군. 늙어지니 관계가 남아.



보통 사람은 죽음이 끝이지만 글 쓰는 사람은 다음이 있어. 죽음에 대해 쓰는 거지.
죽고 나서도 할 말을 남기는 사람과 죽기 전부터 할 말을 잃는 사람 중 어느 사람이 먼저 죽은 사람인가?
유언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거라네.


그는 유언할 수 있어 행복하다 말했지만, 그의 유언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 그는 마지막까지 타자를 생각한 것이었다. 죽음, 그 철저한 고독 앞에서 타자를 생각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이 또한 그가 평생 관철해온 관심, 관찰,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가장 부유한 삶이란 '이야기가 있는 삶'이라고 했으니, 그에게 주어진 날들을 풍성하게 누리고 생을 마감했으리라.





책 정보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김지수, 열림원 펴냄

함께 읽은 책 : 《언어로 세운 집》 이어령, 아르테 펴냄

Photo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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