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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May 03. 2022

읽고, 쓰고, 해석하고, 춤추어라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읽고

손을 자르라니, 그것도 기도하는 손을? 도대체 무슨 거창한 말을 하려고, 아니 그렇대도 너무 폭력적인 명령 아닌가. 뭘 어쩌라는 건지 들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책을 펼쳤다.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눈에 들어왔다.


읽고 나니 이 책은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왜 읽어야 하는지'에 관해 설명하고 논증하는 책이라는 것은 알겠다. 제목이 상징하는 바도, 거칠게 이야기한 의도도 어렴풋알 것 같은데 명확해지려면 정리가 필요했다.


누구의 부하도 되지 않았고
누구도 부하로 두지 않았다


사사키 이타루는 먼저 위와 같은 문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말은 철저하게 스스로 사유하려는, 비판적 사고 없이는 어떤 정보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실천을 위해 그는 고등교육을 중도 포기사상과 비평, 학문, 지식과 정보 차단을 선택했다.


배경은 이 시대 전문가와 비평가들의 폐단을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비평가들을 일컬어 '모든 것을 말하려는 자', 전문가들이란 '어떤 하나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하려는 자'로 규정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전체주의적 환상'라는 향락에 사로잡다는 것다. 그의 말대로 이제는 온라인 댓글 속에도 주변에도 전문가들뿐이다. 그들은 다른 가능성은 생각할 여지도 없다는 듯 확신에 차 있다. 

그는 들뢰즈와 니체가 그랬던 것처럼 책을 읽고 치열하게 사색한다. 읽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 것이, 그에게 책이란 지각과 사고 체계를 뒤흔드는 충격이기 때문이다. 그책 속 사상을 모두 받아들일 경우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또 한 번의 과격한 표현을 사용다. 책을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괴로운 느낌이야말로 '독서의 묘미'며, 감명을 받도 금방 잊어버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자기 방어'라설명도 이어진다.


결국 그에게 읽기란 좁은 의미로는 존재에 대해 알고자 하는 ‘지독한 싸움’이자 넓은 의미로는 정보와 반대되는, 생각을 잉태하며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읽기 = 생각을 잉태하여 세계를 변혁 = 혁명


공식화하여 생각해보니 그가 왜 독서를 두고 미쳐버릴 정도의 일이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그에 따르면 혁명의 본질은 폭력이 아니다. 텍스트가, 문학이 있어야만 혁명이 따를 수 있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사고를 마비시키기 위해 읽고 쓰기 금지으나 신문 기사 한 줄과 노트 한 권으로부터 윈스턴의 각성이 시작된 것처럼.




혁명이 ‘읽기이자 텍스트 고쳐쓰기’라는 주장에 대한 근거로 그는 폭력이 전제되지 않은 위대한 혁명이 존재했음을 역사적 사실로써 제시한다. 먼저 제시한 사례는 ‘중세 해석자 혁명’과 루터의 ‘대혁명’이다. 당시 혁명자들 읽기와 번역을 통해 세계를 바꿨다는 것이다.


다음 사례는 이슬람의 기원이다. 문맹이었던 무함마드는 ‘읽어라’라는 신의 계시를 받고 읽을 수 없는 대상을 읽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는데,  계시를 ‘기적의 체험’이 아닌 읽기의 매개자, 즉 ‘번역자’를 만난 것으로 해석한 것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렇게 보면 이슬람이 서구 세계보다 앞서 지적 확장과 문화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도 '믿어라, 따르라'가 아닌 읽기쓰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어서 그는 텍스트 문학이 현대에 이르러서는 정보라는 틀에 갇혀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서구의 정치와 종교가 결합하여 지배적인 구조를 형성했고, 세계로 수출되어 정보를 통제하는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일부 종교는 ‘텍스트’를 제시하되 해석할 권한을 주지 않고 무조건적인 수용을 요구한다.




이제 책 제목의미하는 바를 말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정보와 폭력의 양자택일’에 갇힌 우리는 문학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정보에 매몰되거나 수동적인 읽기 태도를 '잘라' 버리고 텍스트 본연의 의미를 찾아 읽고, 쓰고, 해석하고, 다시 읽으며 혁명을 향한 힘을 키우고 춤을 추자는 것이다. 텍스트에는 정보와 오락만 있는 것이 아니며, 생각을 뛰어넘는 생각을 품게 하는 힘, 다른 세상을 창조하는 힘이 있음을 잊지 말고 지치지 말자는 독려다.


정보를 누구보다 빨리 전달하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있다. '그거 들었어요?' 또는 '이건 엠바고인데'라고 시작되는 대화의 피로를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저 말에는 어떠한 생각도 의견도 없이 정보 자체를 무기로 삼으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런 경험과 이 책을 통해 정보를 수용하기 전에 비판적인 사고를 강화해야 함을 재인지고, 적극적인 읽기글쓰기지속할 이유를 찾다.




책 정보 :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사사키 아타루, 자음과모음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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