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질서와 혼돈, 삶의 의미와 허무에 관한 책이다.
아니다, 이 책은 지배와 폭력에 대한 책이다.
다시 말해야겠다. 이 책은,
정체성의 상실과 회복의 여정을 쓴 글이다.
아니다, 모두 아니다.
이 책을 어떤 장르로 분류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맞겠다.
이 책이 내게 그러했듯 삶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돌부리를 들이밀고, 우리는 고꾸라진다. 서운해할 것 없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영웅이나 멘토, 사랑하는 대상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때때로 누군가와 무언가에게 나의 모든 것을 줄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는, 또는 그것은 나의 모든 것을 가져가 버리기도 한다.
이쯤에서 나의 마음속 글 선생님 한 분을 소환해야겠다. 정희진 작가에게 〈차이에 대한 공부〉를 주제로 4차시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매 차시마다 인식의 틀이 깨지는 괴로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맛보았는데, 그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긴 시간과 치열한 공부 의지를 흔드는 두 단어였다.
Messy and Random
벤야민을 인용한 것인지 확실치 않지만, 이 두 단어가 그가 정의한 삶이었다. 혼돈과 무작위, 복잡함과 난잡함. 이것이 법칙 없는 삶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법칙이라는 뜻이었다. 룰루 밀러가 “이 세계에서 확실한 단 하나이며, 우리 모두를 지배하는 주인”이라고 표현했던 바로 그 혼돈.
혼돈은 대개 허무를 동반한다. 이 두 가지는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작용하며 여러 삶의 태도를 만든다. 안타깝게도 룰루 밀러는 삶의 본질을 너무 일찍 전해 들었다. 그의 아버지는 스스로 깨달아야 할 삶의 진실이라는 영역에 함부로 침범했다. 게다가 그 시기에 밀러는 성적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다윈의 인용구는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어떤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라며 꾸짖었다. (…) 하지만 때로 그 말은 비난처럼 느껴졌다. 네가 그 장엄함을 보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는 말처럼.
아버지가 좋아했던 다윈의 문장마저 그를 괴롭혔다. 그래도 그는 자신을 놓지 않았다. 어떻게든 견뎌 보려고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남긴 불굴의 의지를 따라가 보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위로를 받기도 했으나 결국 그가 찾아낸 것은 아버지가 인용한 것과 같은 다윈의 문장과 우생학이었다. 우생학이란 다른 말로 하면 ‘인종개량학’이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발버둥 치던 룰루 밀러는 절멸과 맞닥뜨렸던 것이다. 자신의 성적 성향과 자신은 분류학 내에서 규정될 수 없는 존재라는 위축감과, 다양성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다 말살당한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 절망의 깊이는 어느 만큼이었을까.
데이비드만이 아니었다. 그의 스승 루이 아가시가 그랬고, 1910년대에 “도덕적으로 비뚤어진 자, 정신적 결함이 있는 자, 유전적 불구자들”에게 자선을 베푼다는 명목으로 불임화를 자행했던 이들과, 이를 법제화 한 히틀러가 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히틀러에게 뒤처지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세계를 주도하는 미국 과학자들의 놀라운 이면이 룰루 밀러의 용기 있는 고발로 인해 밝혀졌다. 그들이 “자신의 세계관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이런 일을 자행했다는 것이 내게 허무를 부추긴다. 개선이라는 오만으로 희생된 몇백만의 사람들과 거북하다는 이유로 한 사람의 일생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정희진 작가는 “법칙이 없으므로 사유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사유 없는 성실함이란 얼마나 무서운지, 얼마만큼 커다란 참극을 만들어 내는지 히틀러와 아돌프 아이히만을 통해 보았다. 아가시와 데이비드 같은 분류학자와 우생학자들이 자행한 일들도 이를 증명한다.
지치지 않고 이어진 밀러의 정체성 찾기는 우생학의 이견을 발견하기에 다다른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다윈의 개념이었다. 다윈은 변이와 다양성이 얼마나 건강하고 필요한 것인지 설명했다. 데이비드와 다윈에게 각각 커다란 전복을 맛본 밀러의 여정은 말 그대로 혼돈의 연속이었다. 다윈의 변이 개념은 '민들레 원칙'과 맥을 같이 한다. 민들레는 잡초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상황에 따라 가치 있는 '약초'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호프 자런의 《랩 걸》이 오버랩되었다. 밀러와 마찬가지로 과학자의 딸로 태어나 데이비드처럼 자연을 탐구했으나 다른 방식으로 식물을 분류하고 사랑했고, 불공정과 편견에 맞서 싸워야 했으며 ‘엄마’라는 정체성에 괴로워했던 또 한 사람. 그가 했던 말을 룰루 밀러에게 전하고 싶다.
일단 싹을 틔운 식물은 헤매지 않는다.
룰루 밀러가 자신의 언어로 정의한 잠자리와 나무의 뜻을 보면서, 아니 사실은 책을 읽는 내내, 물고기라는 단어의 잔인성에 대해 생각했다. ‘고기’의 사전적 정의는 ‘식용하는 온갖 동물의 살’이다. 포식자의 입장에서 정의한 이 단어가 매우 불편하고 마음에 걸린다. 서툴지만 저 잔인한 말을 다시 명명하고 정의하고 싶다.
물고기 → 물생명
인간이 다 알지 못하는 신비로운 영역에서 우아하게 유영하는 생명체.
책 정보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글, 정지인 옮김, 곰출판 펴냄
함께 읽은 책 : 《랩걸》 호프 자런 글, 김희정 옮김, 알마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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