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달리 May 18. 2022

이기와 무관심이 지속되는 한, 디아스포라는 계속된다

김영하, 《검은 꽃》을 읽고


죽음이 그저 죽음에 불과하다면
시인은 어떻게 될까?


김영하 작가의 《검은 꽃》은 망국을 버리고 이민을 떠난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발트의 《이민자들》과 《아우스터리츠》처럼, 아우슈비츠 경험을 고백한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처럼, 작가는 떠난 이들을 대신해서 국가와 민족이라는 폭력에 희생된 사연들을 소설로 담았다. 살기 위해 제 땅을 탈출한 사람들이 겪은 삶과 죽음의 진실된 기록을.

 



《검은 꽃》은 1897년 대한제국 선포로부터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기까지, 한반도의 운명이 기울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허울뿐이던 대한제국은 열강의 침략과 지도자의 무능으로 무너 민중들의 삶마저 절망으로 몰고 간다. 희망을 찾아 멀고 먼 멕시코로 떠난 이들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등장인물들은 고국의 몰락과 타국 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기구한 운명을 짊어진다.



땡볕 아래서의 노동은 고되었고 착취와 기아가 반복되었다. 구타과 협박이 난무했고 조선인들은 피 흘리며 일했다. 이 혼돈 속에서남성들은 일을 끝내고 술을 마셨고, 여성들은 가사 노동맡으며 성욕의 도구가 되었다. 모두가 인권을 빼앗겼으나 그마저 동등하지 않았다. 작가가 언급한 대로 여성들은 한 차원 더한 고통 속에 있었을 것이다.


멕시코로 떠나오기 전 양반들은 평민에게 당연하게 행사했던 폭력을 의식조차 하지 못했다. 목숨보다 중하던 귀천의 개념은 그들만의 문화권을 벗어나면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이종도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기회가 있었음에도 왕족 출신 양반이라는 허울을 버리지 못했고, 일하지 않음으로써 가족들에게 이중의 고통을 겪게 했다.


소설에는 이처럼 양반과 천민, 남자와 여자, 신부와 군인, 무당, 고아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검은 꽃’은 이들이 뒤섞여 만든 혼합색이자 희망을 잃어가는 색이 아닐지. 그들 모두 존엄한 인간이자 아름답게 피어야 했던 꽃이다. 그들이 국에서 목숨 걸고 투쟁하 세우고자 했으나 끝내 실패했던 ‘신대한’ 또한 세상에 존재하기 힘든 ‘검은 꽃’ 투영된다.




책을 읽고 국가 폭력과 인권에 관심이 생겼다. 먼저 폭력이 발생하고 작동하는 구조가 궁금해서 관련 책을 찾았다. 《인간은 왜 폭력을 행사하는가?》에서는 폭력이 힘의 상대적 우위이익 추구, 집단적 묵인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배경 위에서 행해지는 국가적, 국제적 폭력은 난민을 발생시키고, 이 결과로 죄 없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다.


대국들의 침략과 정치적, 종교적인 세력 다툼이 증가하며 난민이 많아지면서 인권의 보장이 해졌다. 인권은 국가가 우선하여 보장해야 하는 개념이지만 박해를 받아 자국을 떠난 난민은 보호받을 길이 없다. 이에 유엔은 1948년 세계인권선언을 발표했지만 선언 이후에도 인권은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



《검은 꽃》에서는 착취, 신앙의 자유 박탈, 여성과 어린이에 대한 야만적 행위 등 인권과 관련한 온갖 문제를 다룬다. 그리하여 내가 지금 누리는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생명의 존엄성은 언제 어디서든 지켜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지금껏 지켜주지 못했던 인권의 부재까지도 알려 주었다.


대한제국 당시 우리 민족이 겪은 것처럼 팔레스타인과 콩고,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수많은 난민이 쏟아져 나오지만 우리 사회에서 체감하기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는 우리나라가 난민 수용에 소극적이고 인식도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뿐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의 이민 노동자들도 폭력과 차별을 겪고 있다.


이민자와 이주자, 난민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개인의 영역에서는 차별과 착취, 사회의 영역에서는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이들을 잠재적 범죄자나 불법 체류자로 여기는 태도가 제 삶을 이미 포기한 적 있는 그들을 다시 절벽으로 내몬다. 멕시코 이민자들이 겪었던 일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땅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부터 보호하는 일이다.



홍콩 사태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침공 지켜보면우리가 누리는 인권과 평화의 개념은 끊임없는 투쟁으로 지켜진다는 것, 의식하지 않으면 어느새 야만과 폭력의 길로 접어들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집단의 이기와 폭력을 묵인하는 이 개선되지 않는 한, 디아스포라는 계속될 것이다. 작가가 서두에 인용한 시 말하듯, 허망한 죽음을 누군가는 기억해야 하며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1980년 5월 18일,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모든 분들께 애도를 전합니다.




책 정보 : 《검은 꽃》 김영하 글, 문학동네 펴냄


함께 읽은 책  :

《이민자들》 W.G. 제발트 글, 창비 펴냄

《아우스터리츠》 W.G. 제발트 글, 을유문화사 펴냄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 글, 돌베개 펴냄

《인간은 왜 폭력을 행사하는가?》 정윤수 · 정창수 외, 철수와영희 펴냄



Photo : pixabay.com

매거진의 이전글 경계인의 시각으로 구조를 해체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