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블레이크의 의미심장한 시와 불가사의한 죽음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주인공은 늘 불안과 통증에 시달리는, ‘망령 든 노파’라는 별명을 가진 두셰이코다. 그는 이웃이 몇 되지 않는 폴란드 외곽 지역에 살고 있다. 낯선 인물 설정이었기에 인물을 이해하고 감정이입을 시도하는 한편, 주변 인물들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 나가는 두 갈래의 관전 포인트를 가지고 책을 읽었다.
두셰이코는 고집스럽게 점성학을 탐구한다. 그가 사람의 운명을 점성학과 결부시키는 이유는 결정론적인 태도 때문이 아니다. ‘세상은 거대한 그물이며, 그 어떤 사물도 개별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하나의 전체’라는 믿음 때문이다. 어떤 현상의 단면이란 ‘단일 사건의 여러 측면’ 중 하나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함부로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통증과 노화도 두셰이코에게 삶의 깨달음을 일깨우는 데 한 몫을 한다. 고통은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것으로써 타자와 분리된 자아를 인식하게 한다. 노화를 겪으면서는 존재의 소멸을 예감하는 동시에 자연의 광대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짧은 순간 존재할 생명체들에 대한 연민을 갖는다. 그런 그이기에 참을 수 없는 것은 자연을 역행하는 행위와 오만이다.
그는 동물들을 학대하는 인간들을 혐오한다. 아픈 몸을 이끌고 분노를 에너지 삼아 적극적으로 사냥꾼들을 저지하고 올가미를 치우고, 정부 기관에 신고하고 항의 편지를 보낸다. 다소 과격하고 폭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두셰이코와 사냥꾼들의 차이점은 폭력의 이유다. 사냥꾼들은 고뇌 없이, 즐기기 위해 살상을 하지만 두셰이코는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써 폭력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펜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 그들은 뭔가를 끊임없이 관찰하는 눈이며, 자신이 보는 모든 것을 문장으로 바꿔 버리는 존재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모든 것들로부터 현실을 끄집어내어 거기서 가장 본질적인 것, 그러니까 말이나 글로는 표현 불가능한 것들을 삭제해 버린다.
두셰이코는 "말로 할 수 없을 때, 그때 글을 써야 한다"라고 말하면서도 글쓰기 역시 전부가 아니며, 본질일 수 없다는 사실도 강조한다. 소설가가 소설 속 인물을 통해 글쓰기를 성찰한다는 것. 이 메타인지적 글쓰기를 하는 작가가 궁금해져 찾아 보니 그는 글쓰기를 넘어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는 재단을 설립하여 여성과 동물의 권리를 위한 연대를 추진하고 있다.
2020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작가는 폴란드 문화에 대해 ‘경계의 문화’라고 정의했다. 그 인식은 작품 곳곳에 녹아 있는데, 체코와 맞닿은 폴란드의 외곽이라는 지역적 배경과 마을 사람들조차 주목하지 않는 노년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것이 그것이다. 경계에서 바라보아야 비로소 자신이 속한 세계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으며, 인식과 구조의 틀을 깨고 확장해 나아갈 수 있다. 그 위치적 의미와 함께, 만물을 존중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마음으로 존재와 타자에 대해, 육체와 영혼에 대해 고민하는 철학자 두셰이코는 ‘문학’과 닮아 있다.
책 정보 :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올가 토카르추크, 민음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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