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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Apr 28. 2022

비극의 굴레에서 마주한 고통의 정점

조예은, 《칵테일, 러브, 좀비》를 읽고


조예은 작가의 《칵테일, 러브, 좀비》를 읽었다. 이 책에 실린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제2회 황금가지 타임리프 소설 공모전 우수작으로 소개되어 있다. 황금가지 출판의 책을 읽었던가 싶어 독서록을 뒤적여 보니 켄 리우의 SF 소설 두 권이 있었다. 아하, 그제사 기억이 났다. 내 생각은 대개 독서록에서부터 출발한다.


출판사가 운영하는 브릿G라는 플랫폼에 들어가 보았다. 브런치에서처럼 많은 소설들이 쏟아져 나오는 공간이었다. 장르소설이 홀대받는다는 건 이미 옛말이 되었나보다. 공모전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는데 타임리프부터 종말, 어반 판타지, 로맨스릴러, ZA(좀비 아포칼립스) 문학 등 색깔이 확실했다. 몰랐던 또 하나의 신세계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칵테일, 러브, 좀비》는 고통과 죽음 사이의 어떤 것을 주제로 한 조예은 작가의 단편 모음집이다. 그중 “이것은 흔하고 흔한 이야기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는 존속살해를 다룬 이야기다. 본문에 ‘진부하지만 자극적이고, 안쓰럽지만 불편한’ 이야기라고 부연된 대로. 소재만으로 긴장이 되는데 여기에 타임리프라,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존속살해는 사건 자체도 비극이지만 사건이 일어나기까지가 더 비극이기에 이를 끝내기 위한 시도일 것이라고 감히 추측해본다. 소설에서 남은 자 자살는데, 그 죽음의 순간에 그는 '상황이 달랐다면 누군가는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떠올린다. 동시에 그것이 해서는 안될 생각이었음을 의식한다. 그러자 장면이 바뀌고 폭력에 환멸을 느끼는 화자 바뀌면서 공포감을 고조시킨다.


가장 공포를 느끼는 순간은 내가 아니라 지켜내고 싶은 대상을 잃었을 때다. 작품 속 인물들은 이 때문에 타임리프의 유혹에 넘어가고, 각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세 번의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러나 어떤 시점에서 시작해도 잔인한 죽음으로 귀결되고 만다. 마치 하수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소용돌이에 물을 붓고 더 많이 들이부어도 결국은 휩쓸리는 현상처럼.



과거로 돌아가서 막아보려 했던 폭력이 다시금 펼쳐지는 장면은 인지의 비극이자 재현의 비극이며 선택의 비극이기도 하다. 타임리프로 인해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을 다시 겪는 이중의 고통, 그것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겹겹의 고통. 소설 속 인물들도 마지막 기회에 이르러서는 체념하고 만다. 게다가 화자들은 진실을 알게 됨으로써 더 깊은 차원의 고통을 마주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타임리프에 갇혀버린 가족 이야기는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는 메시지와 비극의 기능인 ‘고통을 통한 깨달음’이라는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오이디푸스에게 범인은 바로 당신(또는 당신의 분신)이라고 말하는 순간, 제 눈을 찌를 수밖에 없었던 그것이다. 《오이디푸스 왕》이 두 나라의 왕족 사이에서 신탁과 탄생 설화에 얽힌 거대하고 오래된 이야기라면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는 지금도 어떤 가정 내에서 은밀하게 폭력의 굴레가 만들어지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은유하기에 진정 공포다.


어린 시절에 접한 타임리프는 대개 신나는 모험을 다룬 희극이었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 만난 타임리프 이야기는 대체로 고통이자 때로는 형벌에 가까운 비극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닮아 있다. 비관의 정점을 넘어 조금 더 성숙한 이후에 바라보는 관점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붙음으로써 력이 난무하는 세상 수 있는 까. 이 접속사를 거듭 확인하기 위해 읽고 또 읽는다.




책 정보 : 《칵테일, 러브, 좀비》 조예은, 안전가옥 펴냄

Photo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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