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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Oct 18. 2022

샤워실의 온도차


토요일은 자유 수영을 갈 생각에 기대가 되는 날이다. 그러면서도 막상 귀찮아서 여유를 부리다가 시간대를 놓친 뒤 뒤늦게 아쉬워하는 경우도 잦다. 그렇게 2주를 빈둥거리며 수영을 못했더니 물이 몹시 그리워졌다. 큰 마음을 먹고 글을 써보려고 책상 앞에 앉은 지 5분이 되지 않았에도, 시간을 확인하고는 미련 없이 수영 가방을 챙겼다. 시작 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다.


막상 끝내고 나면 그렇게 개운하고 스스로가 대견할 수 없지만, 시작을 하기까지가 망설여진다는 것이 운동과 글쓰기의 공통점이다. 시도하지 않음으로써 몸은 안락하지만 마음은 불편한 쪽을 택할 것인지, 귀찮음과 막막함을 무릅쓰고 보람을 얻을 것인지 갈등하는 사이에서 주로 전자가 이기는 경우가 많지만 언제까지고 몸의 편안함에 질 수는 없는 일이다.



바깥 날씨가 좋아서 다들 나들이를 갔는지 수영장은 한산했다. 수온은 28.5도, 적당한 온도지만 발끝으로 체크해보니 체감상 물 너무 차게 느껴진다. 그럴수록 준비 운동을 힘차게 하며 몸을 풀었다. 움츠리면 추위는 더 거세진다. 과감하게 몸을 던져서 한 바퀴만 달리고 나면 추위는 금세 달아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니 망설이지만 않으면 된다.


수영을 잘하는 분들과 한 레인에 있으면 쉬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코로나로 한동안 오지 못했다가 다시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터라 반 바퀴만 돌고도 헉헉댔다. 오래 숨을 고르면서 열심히 하는 분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이리 비키고 저리 쭈글대곤 했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레인에서는 내 호흡으로 가고 설 수 있으니 오래 쉬지 않아도 출발할 때 부담이 되지 않았다.


숨쉬기가 편안해지니까 팔을 저을 때마다 매번 숨을 마시지 않아도 되었고, 세 번 휘저을 때마다 한 번 숨을 쉬니 완주 속도는 더 빨라졌다. 부담이 적어질수록 자신감 붙었다. 남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 이렇게 안심되는 일이었나. 물을 가르면서 문득 글쓰기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내 속도에 맞춰 조급해하지 말자고, 그저 꾸준히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물을 먹을까 봐 무서워서 평소에 자주 하지 않던 배영도 시도해보았다. 도착하면서 머리를 박은 적 몇 번 있어서 겁이 났는데, 천장에 그려진 레인을 확인하 위치를 가늠할 줄도 알게 되었다. 힘이 들고 멈추고 싶을 때마다 조금만 더 가면 삼색 깃발이 나의 출발을 응원하고 도착을 반겨준다고 생각하면서 안간힘을 냈다.


수영장 전면에 걸린 디지털시계의 숫자가 바뀌는 것을 쉬면서 초조하게 바라보았던 지난과 달리, 쉼 없이 흘러가는 50분의 시간을 차분히 응시하며 수영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목표했던 50미터 15바퀴를 달성하고, 1분이 남은 시점에서 반 바퀴를 더해 15.5바퀴로 수영을 마쳤다. 보잘것없는 기록이지만 휴식 시간을 대폭 줄였다는 점에서 내겐 의미 있는 시도였다.



생각해 보면 나는 유달리 잘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다. 수영도 우쿨렐레도 기타도, 노래나 음주나 글쓰기도 애정하는 만큼, 그리고 끊임없는 시도에 비해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기가 버거운 일들이다. 그러나 오늘 또 한 번 느꼈다. 잘하는 게 있다는 것도 좋겠지만, 잘하지 못하면서도 즐길 수 있는  다는 것이야말로 큰 축복인지도 모르겠다고.


수영을 마치고 샤워실로 들어가, 입장하기 전과 같은 자리에서 같은 온도로 샤워를 했다. 들어갈 때는 몹시도 차가웠던 물줄기가 나올 때는 뜨겁게 느껴져서 온도를 낮춰야 했다. 이 온도차가 제법 좋았다. 겨울이 다가올수록 수영장에 가기 싫어지고, 잘 쓴 글을 볼 때마다 조금은 위축되겠지만 그때마다 이 온도차를 생각하기로 했다.




Photo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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