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보선,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를 읽고
태어난 이래 나는 줄곧 / 어쩌다 보니,로 시작해서 어쩌다 보니,로 이어지는 / 보잘것없는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 어떻게 하면 깨달을 수 있을까? / 태어날 때 나는 이미 망각에 한 번 굴복한 채 태어났다는 / 사실을, 영혼 위에 생긴 주름이 / 자신의 늙음이 아니라 타인의 슬픔 탓이라는 / 사실을, 가끔 인중이 간지러운 것은 / 천사가 차가운 손가락을 입술로부터 거두기 때문이라는 / 사실을, 모든 삶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고 / 태어난 이상 그 강철 같은 법칙들과 /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내가 선택하고 빠져드는 대상은 단순히 주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인간들의 탄식, 좌절, 환호성, 기쁨, 경탄이 어려 있는 세계라는 것을. 그리하여 내가 이 세계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세계를 부각시키는 것이고, 그 세계와 연루된다는 것이고, 그 세계에 참여한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잊지 않으리
어젯밤 창밖의 기침 소리
우리는 과거로부터 온 흐름 속에 존재하며 우리의 역할은 그 흐름을 이어가는 것이다. 누구는 대담하고 누구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영웅이 될 필요가 없고 될 수도 없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조짐, 움직임이다. 익명의 바통이다. 그리고 그 바통 위에는 ‘끝나지 않았어’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