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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Sep 01. 2022

읽고 쓰기를 지속할 이유

김영하, 《말하다》를 읽고


소설가 김영하의 산문집을 읽었다. 타인들과 전문가들은 어떻게 읽고 어떤 방식으로 쓰는지, 그러한 행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늘 궁금했다.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작가인 그가 내게 어떤 방향성을 제시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있었다. 소설가를 꿈꾸는 것은 아니지만, 읽고 쓰는 삶을 어떻게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갈지에 대한 목마름 때문이었다.




그는 읽고 쓰기를 주제로 한 인터뷰와 강연을 묶은 3부작 《보다》, 《말하다》, 《읽다》를 냈다. 그중에서 '삶, 문학, 글쓰기'를 다룬 《말하다》는 “내가 사는 사회 안으로 탐침을 찔러 넣어야 한다”라고 했던 그의 말이 뜻하는 바를 부연하며 시작된다. 그는 희망이 없어진 이 사회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는 의미였다고 설명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낙관이 아니라 비관이다.


신선한 명제였다. 그는 많은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스스로를 바꾸는 일이 그리 쉽지 않음을 지적한다. 그렇게 쉽다면 자기계발서가 그렇게 많이 팔릴 리가 없다는 것이다. 자신을 바꾸기보다는 관점을 바꾸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며,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대책 없는 낙관’ 보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비관적 현실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현실을 직시하는 비관주의를 가지면서도 삶의 윤리에 있어서는 ‘건강한 개인주의’를 통해 타인에게 쉽사리 동조되지 않는 힘을 길러서 ‘남이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더불어 그는 내면의 구축에 꼭 필요한 것이 ‘구매가 아니라 경험에서 오는 즐거움’임을 강조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경험의 즐거움이 있겠지만 시간과 돈을 크게 쓰지 않고도 가능한 것 중의 하나가 읽고 쓰는 일이다. 더불어 안전하다는 장점도 있다. 분쟁과 전염병 등으로 위험해진 여행과 달리 읽기는 책장을 열자마자 어떠한 위협 없이 낯선 세계를 여행하면서 특별한 인물들을 만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털리는 시대’에 누구도 가져갈 수 없고 공유할 수 없는 경험을 쌓는 일, 단단한 내면을 만들고 스스로를 지킬 힘을 키우는 일, 이것이 바로 김영하 작가가 말하는 독서가 필요한 이유다. 독서를 마음껏 즐기면서 누구도 말릴 수 없고 비난할 수 없는 ‘정신적 바람둥이’로 살아보라고 그는 권한다.


문학은 성공하는 방법은 가르쳐줄 수 없지만 실패가 그렇게 끔찍하지만은 않다는 것, 때로 위엄 있고 심지어 존엄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러니 인생의 보험이라 생각하고 소설을 읽어라.


그는 모든 사람들이 다중의 정체성을 가지기를, 그리고 그 중 하나가 예술가이기를 바랐다. 그의 말을 읽고 어떤 인물이 떠올랐다.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늑대》에서 주인공은 내면의 파우스트적인 이중성 때문에 괴로워하는데, 그 이중성을 합치하여 단일화하는 것이 구원이 아니었다. 예술적인 다원성이야말로 인간의 영혼에 꼭 필요한 것임을 헤세는 소설을 통해 보여주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극한에 치달은 순간에도, 심지어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할 수 있으며 억압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마지막 수단이 바로 글쓰기라고 그는 단언한다. 자신의 장래 희망은 여전히 소설가이며, 마지막 순간까지 글을 쓸 것이라면서.


소설가의 장래 희망이 소설가라는 점은 놀랍다. 자신이 좋아하던 일을 직업으로 삼았을 때 오는 권태와 한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해 본, 심지어 지금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죽을때까지  꿈꾸는 일이라면 그 말을 믿고 한번쯤은 도전해볼만 하지 않을까?


읽고 쓰기가 중요하다 해도 모든 것을 내던질 필요는 없다. 자신의 일상과 직업을 지키면서 한 가지 정체성을 더 부여하기만 하면 된다. 읽고 쓰는 건 소파에서도, 침대에서도, 심지어 지하철 안에서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토록 쉬운 방법으로 어떠한 억압에도 무너지지 않을 견고한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니, 어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므로 오늘, 또 다시 책을 펼친다.


자기 세계를 가진 이들이
타인을 존중하면서 살아가는 세계가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계의 모습입니다.




책 정보 : 《말하다》 김영하 글, 문학동네 펴냄

Photo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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