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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Jan 31. 2023

고양이와 인사하기 1


한 달이 넘도록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왜냐하,


막내 고양이 율무가 아팠다. 2.5kg의 작은 고양이. 11월 말부터 급작스럽게 살 빠지고 구토를 기 시작했다. 야생성이 남아있는 고양이는 아픈 것을 숨기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인지 율무는 자꾸만 구석으로 숨어 들어갔다. 별일 없을 거라고, 곧 괜찮아질 거라고 줄곧 나를 속였으나 악화되는 상황은 속속 드러났다.


빈혈 수치가 심각했다. 귓속과 잇몸이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방사선 초음파로 확인되지 않는 빈혈과 혈토의 원인을 찾기 위해 내시경을 해야 했으나  마취 위험한 상황이었다. 일상의 평온이란 가족이 아프다는 것 하나로 와르르 무너져 내릴 수 있는 허약한 것이었다. 기타를 잡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었다. 일정은 유예되고 약속은 취소되었다.


수혈이 급한데 고양이 혈액은 구하기도 어렵고, 흔한 혈액형이 아닐 경우 더욱 그렇다고 한다. 다행 율무는 A형이었다. 수혈 거부 반응으로 열이 오르거나 쇼크가 발생할 위험 감수해야 다. 이 과정에서 피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길러지는 공혈묘의 존재를 알게 되어 마음이 매우 불편했음에도 달리 길이 없었다.



이틀을 기다려 필요의 절반인 40ml의 혈액이 도착했다. 8시간에 걸 수혈 20 아래였던 빈혈 수치를 25 정도로 올리고 내시경 했다. 위가 붓고 하부가 좁아져서 가느다란 내시경이 끝까지 접근할 수 없는 상태였다. 조직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빈혈과 재생성 수치가 곤두질치고 알부민 수치까지 위태로웠다.


조직검사 결과 이상하게도 이상이 없다. 일주일 만에 퇴원 집에 온 율무는 식욕을 조금 회복했고, 내 손에 기대 처음으로 깊은 잠을 자기도 했다. 그나도 사나흘, 증상은 처음으로 다시 돌아다. 결국 내시경이 들어가지 못할 만큼 좁아져 있던 위의 아래쪽 부분을 제거하고 검체를 다시 취하기 위해 개복 수술이 결정되었다.


수치 저하로 수술이 연기된 날, 나는 대상포진 진단을 받고 드러누웠다. 가족들이 아픈 고양이를 데리고 역삼동수혈을  다음날에야 수술할 수 있었다. 섬유화로 뭉친 위 하부를 잘라 재검을 보내고, 악성 종양일 경우를 대비해 암 치료제 반응성 검사도 함께 보냈다. 어찌 됐든 문제 부위를 제거했으니 한숨 돌리는가 싶었다.



3일이면 회복되고 7일 후면 퇴원하리라던 예상은 다시 흔들렸다. 수술 부위에서 출혈이 있는데 원인을 모른단다. 계속될 경우 다시 열어 확인해야 한다니... 게다가 혈액 공급에 이슈가 생겼다. 빈혈수치가 15 이하로 떨어지면 우리집 고양이들의 헌혈로 수혈하는 걸 최후의 수단으로 었다. 빈혈이 위험한데 출혈 계속되고 수혈은 할 수 없는 현실에 내 안에 있던 무언가가 툭 하고 부러지고 무너져 내렸다. 


그날 상담실에서, 그리고 입원실에서 영문도 모른 채 버티고 있는 율무를 앞에 두고 얼마나 울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남편 달브가 앞서 절망했을 때는 딸이 아플 때도 우린 잘 견디지 않았느냐고, 희망을 갖자고 다독였지만 이제는 나도 버틸 힘이 없었다. 사람이 아니라서, 고양이라서, 알 수 없는 영역이라서 그때보다 더 두렵고 막막하다고 했던 달브의 말이 내게도 자꾸만 스며들었다.




피 말리는 입원 기간이 지속되었다. 나에게는 비유였지만 율무는 표현 그대로 피가 말라가고 있었다. 10일이나 걸려서 받은 조직검사 결과는 악성 림프종 중에서도 예후가 나쁜 large cell type이라고 적혀 있었다. 발병 후 사망까지 최소 6주에서 최대 28주라는 냉혹한 수치... 정말 그럴까. 우리 순하디 순한 율무가, 성질 한 번 낸 적 없고 바라는 게 있어도 야옹 소리조차 내지 않고 큰 눈망울로 바라보기만 했던 저 작은 생명이 어떻게 이런 확률에 갇힐 수가 있을까.



10여 종의 항암제 검사에서 반응성이 50%가 넘는 그래프가 하나도 없었다. 약효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였지만 포기할 수도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독성이 없으면서 저렴한 스테로이드와 PIX(피록시캄) 반응성이 그나마 좋았다는 것뿐이었다. 매번 입원 투약을 해야 하는 약이나 발암 성분 때문에 다른 반려동물이나 사람에게까지 위해한 약은 피할 수 있었으니.


결과를 받던 날, 3시간이 넘도록 수의사 선생님과 함께 고민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퇴원이 결정되었는데 간절히 바라던 바였지만 무서웠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신호였기 때문에. 그날 기타 레슨이 있었는데 한 시간 전에야 선생님에게 연락해서 바보같이 울먹거리고 말았다. 수업을 당분간 쉬겠다고 말씀드렸다. 기타를 잡지 못한 지 오래였고, 이후로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반가움과 두려움이 범벅된 눈물을 쏟느라 이중 결제가 되는 것도 모르고, 이제 2킬로그램이 채 못 되는 나의 보물을 품고 집으로 왔다. 함께 있을 수 있어 기뻤고, 율무도 집안을 두루 살피며 좋아했다. 상태를 살피느라 잠을 설치고 늦게 잠들고 일찍 일어나야 했어도 감사했다. 그렇지만 음식과 약을 거부하는 데 모든 힘을 쓰는 아이에게 억지로 먹이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안쓰럽고 죄스러운 나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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