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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Feb 13. 2023

고양이와 인사하기 2



소화흡수 기능이 약해져서 하루 식사량을 50ml로 제한하라고 했는데, 율무는 10ml도 먹지 못하고 게워냈다. 치우기 쉽게 하려는 배려였을까, 담요를 깔아줘도 자꾸만 차디찬 화장실로 들어갔다. 뭐라도 먹이려고 그릇을 죽 늘어놓으면 귀찮아했지만 도리가 없었다. 한 입이라도 핥아주면 기뻐서 환호했고, 이내 뱉어내면 같이 울음을 토했다. 희망과 절망 사이를 위태롭게 오갔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외래 진료일, 서둘러 퇴근해 병원으로 갔는데 가족들이 울고 있었다. 아침만 해도 걸어 다녔던 아이가 축 늘어져 안겨 있었다. 얼른 받아 들고 선생님에게 살려달라고 매달렸다. 발바닥을 찌르는 혈당 검사도 잘 되지 않았고, 포도당 주사를 놓으려는데 혈관이 머리카락보다 가늘게 수축되어 있었다. 처치 중에도 그 몸에서 손을 뗄 수 없어서 의사간호사 선생님 그리고 나까지 작은 몸에 매달려 있는데 뒤에서 누가 자꾸 내 어깨를 흔들었다.


한참 전부터 나를 부르고 있던 걸 뒤늦게 인지했다. 달브의 그렁그렁한 눈이 이제 그만하자고 말하고 있었다. 그만이라니... 뭘 그만하자는 건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것이 한없이 여리고 어리고 작은 생명이라면 더더욱... 잠시 멍해지더니 그 몸에는 이제 더는 바늘을 찌를 수 없다는 걸 뒤늦게 인지했다. 내가 멈추자 모두가 하던 일을 멈췄고 정적이 흘렀다.




담요로 율무를 감싸 고 집으로 왔다. 동안 율무는 할딱이다가 학학거리더니 숨을 잠시 멈췄다가 토해내기도 했다. 와 숨이 잘 통하도록 쉴 새 없이 문지르고 토닥여 주었다. 럼에도 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쿠키의 뱃속에서 내 손으로 꺼낸 기특한 생명이, 30분 만에 완전히 잦아들고 말았다. 식구들이 모두 모인, 익숙한 공간에서 잠들고 싶어서 안간힘을 다해 우리를 기다려 줬던가보다.


얼마 전에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동료들이 이후의 절차에 대해 알려주기도 하고 위로도 되어주었다. 그 친구들이 없었다면 나 혼자 이 모든 상황을 감당할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2주 먼저 떠난 담이라는 친구와 같은 곳에서 보내주고 나니 고통 없이 둘이 함께 뛰어노는 상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무엇보다 큰 위안이다.



율무는 이제 다시는 아플 일 없는 영롱한 돌이 되어 내 곁에 남아있다. 이제 막 6살이 되었고 이상 징후가 발견된 후 꼭 6주 만이었다. 42일 중에서 17일이 입원 상태였으니 같이 있을 시간이 너무나 부족했다. 그 시간을 가족들과 격리된 채 혼자 버티기 힘들었을까, 두 번의 수혈과 마취와 수술과 매일의 채혈과 검사가 부담이 됐을까... 수액줄과 콧줄과 소변줄이 그 작은 몸을 옥죄었을까? 그래서 어서 벗어버리고 싶었을까?  시간이 율무에게 더 고통을 던 것일까?


치료 과정에서 답답함이 많았지만 병원원망하고 싶지는 않다. 상담을 하다가 담당선생님이 당직선생님과 율무 상태에 대해 대화를 나눈 것을 얼핏 보았기 때문이다. 율무가 드디어 사료를 먹었다는 말에 ‘나이스’라는 간 대답. 그 한 마디에 나는 그를 신뢰할 수 있었다. 소식을 전할 겸 며칠 뒤에 작은 선물을 들고 병원을 찾았다. 여전히 줄줄 울면서 이런 말을 전하러.


다른 고양이들도 있지만 선생님,
너무 고마웠지만 선생님,
우리 당분간은 만나지 말아요.



율무의 안녕을 빌고 나의 슬픔을 애도하기 위해 쓴다. 나와 유사한 경험을 하는 분들에게 막막함을 덜어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마음으로 쓴다. 율무는 떠나갔지만 나쁜 결과를 전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저 매 순간이 막연하고 두려웠고, 어떤 정보라도 얻고 싶었던 심정을 생각하며 가감 없이, 아프지만 낱낱이 기록해 본다.




떠난 건 아주 작고 조용했던 고양이 한 마리뿐, 세 마리 덩치냥들이 지키고 있는데도 집안 휑하기만 하다. 다른 이들은 피붙이가 떠난 걸 아는지 모르는지 잘 지낸다. 달라진 점은 율무가 담당했던 아침잠 깨우기를 보리가 도맡으면서, 곁을 내주지 않던 까탈쟁이에서 무릎냥이 변신했다는 것이다. 마치 빈 자리를 채우고 우리를 위로하는 것처럼. 고양이들은 이별라는 자연의 법칙을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부모님들께서는 안그래도 마음 여린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었냐고 위로를 하시면서도 그러게 더는 키우지 말라고 당부하신다. 니다, 이 진한 경험 우리에게 남긴 것은 상흔이 아니. 율무와의 만남과 헤어짐은 불행이 아니라 그저 삶이었고 고통보다는 축복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아픔도 괜찮다. 고양이가 그동안 내게 준 사랑과 안식을 결코 무너뜨리지 못한다는 것을 이제는 아니까. 아픔과 슬픔도 사랑의 일부이니까.



고양이별에서 평안하기를, 어여쁜 나의 율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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