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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Aug 16. 2023

배움의 공백, 일상의 여백

그리고 뜻밖의 나눔과 응원


기타 레슨을 그만둔 지 8개월째다. 배움을 멈춘다는 게 내게는 낯선 일이었는데, 쉬어 보니 편하다는 느낌도 부정할 수 없다. 잔잔한 일상에 익숙해졌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갈증도 난다. 목마름을 어찌 해소할까 고민하다가 반차를 내고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해 보기로 했다. 다양한 배울 거리 중에서 시간과 장소가 맞는 〈스콘 만들기〉 수업이 적당해 보였다. 베이킹에 관심은 없었지만 갓 구운 스콘을 많이 먹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마음이 기울었다.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쿠킹 스튜디오로 찾아갔다. 선생님은 수업 준비로 분주하셔서 앞치마 입고 손을 씻 기다렸다. 낯선 공간이 주는 긴장은 감각을 깨운다. 몸은 부동자세를 하고 있으면서도 눈으로는 부지런히 공간을 탐색하고 귀도 활짝 열어 두었다. 먼저 레시피가 적힌 종이를 받아 들고 테이블에 둘러앉아 설명을 들었다.


스콘이라는 명칭이 스코틀랜드에서 유래해서 붙은 이름이었다니, 생각이 닿지 않은 영역의 발견과 단순함이 주는 놀라움이 있었다. 내 입맛에는 아침 식사로 스콘만 한 게 없는데, 스콘은 점심과 저녁 사이에 출출할 때 먹기 위해 만든 과자란다. 퍽퍽한 식감이 특징인 스콘은 박력분을 사용하고, 만드는 과정에서도 글루텐이 형성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하셨다.



말로 하는 레시피 설명이 끝나고 실전에 들어갔다. 커다란 볼에 재료를 쏟아 넣고 버터와 달걀과 우유를 첨가하여 스크래퍼로 섞어 주었다. 간접 경험과 직접 경험은 눈으로 읽는 평면 속 텍스트와 오감으로 빚어내는 베이킹의 차이만큼 컸다. 간단하게 생각됐던 과정도 의외의 변수로 인해 어려워지기도 한다. 지도를 보면서도 몇 번이나 스튜디오를 지나쳐버려 수업에 늦은 수강생처럼, 그러는 바람에 우유가 과하게 쏟아져서 질퍽해진 반죽처럼.


선생님께서 빠르게 수습해 주셔서 그분의 반죽은 무사했다. 반죽을 밀대로 살금살금 밀어 모양을 잡고 자른 뒤, 색을 입히고 윤기를 돌게 하는 글레이징까지 마치면 굽기 전 작업은 끝이다. 네 개의 반죽이 사이좋게 오븐 속으로 들어갔다. 찬란한 평일 오후 세 시에 모니터와 마우스 대신 밀가루와 우유를 뒤섞고, 과자 굽는 냄새가 솔솔 피어오르니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말없이 기다리자니 네 명의 수강생들은 머쓱해졌다. “이 시간은 원래 떠들썩한데, 혼자씩 오셔서 대화가 없으시군요!”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슬며시 웃음이 피어오르고, 어디서 왔는지부터 해서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갔다. 모두 직장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고, 회사의 처우로 인해 퇴사를 고민한다는 어떤 분의 고백에 우리는 이내 한 마음이 되어 공분했다. 처음 만난 사이라는 것도 잊고 물리적인 직장의 경계를 넘어 동료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 친구는 어렵게 얻었다는 휴가를 알차게 활용하는 중이었다. 멀리서 일찍 와서 혼자서도 근처 여러 맛집에 들러 야무지게 즐긴 후기를 들려주었다. 수업이 끝나면 또 가볼 곳이 있다고 하여, 길을 잘 못 찾는 그 친구를 모두 같이 데려다 주기로 했다. 잠시 후 달큰고소한 냄새가 번지고 잘 구워진 스콘이 우리 앞에 놓였다. 고만고만한 모양인데도 서로 잘 만들었다고 칭찬하며 먹는 따끈한 스콘다들 지금껏 먹어본 중에 최고다.



양이 제법 많아서 지인들에게 나눠줄 스콘을 포장하는 사이, 선생님은 또 정리를 하느라 분주하신가 싶더니 우리들에게 뭔가를 한 봉지씩 들려 주셨다. 고향에서 전날 수확해서 보내 주셨다는 찰옥수수였다. 냉장고에 넣기는 아까운데 양이 너무 많았던 모양이었다. 꼭 오늘 안에 먹기로 다짐에 약속까지 하고 감사히 받았다.


귀한 음식을 나눠 받고 고민도 듣고 나니, 그저 잠깐 스치고 지나쳤을 사람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다. 다들 크고 작은 어려움을 안고 있고, 하나씩 헤쳐나가는 중인가보다.  친구를 배웅해 주며 마음으로 조용한 응원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 옥수수부터 손질해서 먹음직하게 쪄다. 스콘과 옥수수를 가족들과 나눠 먹으며 생각했다. 나눔의 맛, 응원의 한 이 참 고소하고 찰지다고.





Photo : pixabay.com & @especi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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