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4권, 각 580쪽이라는 분량의 압박에도 《전쟁과 평화》를 읽기로 마음먹은 동기가 있었다.
먼저, 읽을수록 샘솟는 톨스토이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그가 겪었던 온갖 삶의 굴곡과 의문에 쌓여 있다는 사상을 가장 잘 말해주는 것은 그의 저작일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와 《부활》처럼 인물들의 비루한 삶을 웅장한 울림으로 전달하는 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같은 간결한 동화에도 삶의 철학을 담아내는 탁월함이 나를 이끌었다.
두번째로는 <읽고 싶은 책 목록>에서 지우고픈 욕구 때문이었다. 읽은 책과 읽고 싶은 책을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 그러면 도서관에 가도 망설이지 않고 책을 고를 수 있다. 책 제목과 함께 동기도 함께 적으면 시간이 지나도 의지가 흐려지지 않는다.
마지막 동기는 작가들의 존경과 찬사 때문이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톨스토이는 모든 소설가 중 가장 위대하다."라고 말했고 러시아 작가 곤차로프는 "살아 있는 거장이 쓴 러시아판 일리아드(역자 해설에서 인용)"라는 비유로 이 작품을 설명했다고 한다.
톨스토이는 역사책의 한 줄은 후세대에게 아무 의미가 없으며, 역사가들의 방식은 영웅을 기술하는 쉽고도 게으른 방법이라고 비판한다. 그의 말마따나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 실패한 5가지 이유' 같은 것은 내게 어떠한 감흥도 깨달음도 일으키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태어나기 15년 전의 전쟁을 실존 인물과 허구의 인물들로 재구성했다. 영웅들의 의지는 역사 안에서 큰 의미를 갖지 못하며 오히려 역사의 소용돌이가 평범한 개개인들에게, 이들의 의지가 역사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소설을 통해 보여준다.
전쟁과 평화라는 양극화된 개념은 죽음과 삶, 배신과 사랑, 종교와 이성 등 삶의 갖가지 모습으로 변주된다. 이 양극의 경계에 있는 작품 속 인물들은 전쟁을 겪으며 자신만의 가치를 발견해 나간다. 이와 함께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무엇인지 찾아내려는 작가의 집요한 탐구 과정이 어우러져 있었다.
단순히 '소설'이라고 말할 수 없는 많은 것을 담고 있기에 톨스토이는 하나의 장르로 규정되기를 거부했던 것이 아닐까. 소설과 논증, 비평이 어우러진 독특한 형식은 문학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더 즉각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했던 작가의 의지로 읽힌다.
러시아의 정치인이라면 《전쟁과 평화》나 《닥터 지바고》에 대한 감상이 남다를 텐데. 그들은 어떤 인물에게 감정 이입을 했을까? 상상력이 없는 이들에게는 정치를 맡겨서는 안 된다.
책 정보 : 《전쟁과 평화》1 ~ 4, 레프 톨스토이 글, 문학동네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