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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Mar 17. 2022

문학으로 술과 친해지기

문장과 세계 #1


술, 그것은 내게 한때 짝사랑이었다. 음주를 즐기는 친구들이 많았고 술자리의 분위기를 나도 몹시 좋아했지만 내 몸은 술을 밀어낸다.


어떤 주류든 한 모금이라도 '꿀꺽' 마실 경우 목부터 얼굴까지 붉게 물들면서 심장은 쿵쾅대고 두통이 관자놀이를 때린다. 여기서 더 진행되면 급작스레 얼굴이 창백해지고 현기증이 돌며 꼼짝할 수 없게 되는데, 정신만은 말짱한 것이 더 괴롭다.


생존본능으로 나는 레몬맛 나는 순한 보드카를 주종으로 선택했고, 최근에는 알코올 3%의 톡톡 시리즈를 여행 등의 술자리에 준비해간다. 물론 톡톡이도 음주 속도에 따라 반 캔만에 취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술을 먹이지 못해 안달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들은 음주가 즉각적인 통증을 일으킨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하고 생존의 문제일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오랜 친구지만 그런 이들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술을 권유하는 문화도 바뀌고 술자리도 많지 않아 곤란을 겪을 일은 많지 않다.




그런데 최근 술을 정말 좋아하는 지인들을 알게 되어 다시 술과의 인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그분들은 내가 생각지 못한 다양한 선물을 보내시곤 한다. 받기만 하는 것도 어려워서 이런저런 선물을 고민해봐도 결론은 술이었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술뿐이었다. 몇 가지 선물을 거쳐 얼마 전 선물했던 위스키를 가장 좋아했고 그 날 바로 바닥을 드러냈다.

위스키가 '영혼'이라고 불린다면
씽글몰트야말로
그중에서도 가장 정제된 형태이며,
순수한 영혼은 천사뿐 아니라
악마의 것이기도 하다.


그 즈음 은희경 작가의 《중국식 룰렛》을 읽고 있었는데, 동명의 단편에서 위스키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이처럼 문학적인 표현을 한 작가는 술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안다는 것이 꼭 잘 마신다는 것을 의미할까? 술을 못 마시는 나도 저 문장을 이해하고 싶었고, 위스키가 어떤 술이고 싱글몰트란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다.


검색을 통해 곡류나 과일 중에서 당이 많은 것만 술로 만들 수 있으며 주로 싹이 난 보리(엿기름)를 당화하고 발효시켜 맥주를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위스키는 맥주를 증류한 것이라고 한다. 막걸리를 증류하여 소주를 만드는 것처럼.


 whiskey라는 말의 어원은 켈트어로 '생명의 물'이라는 뜻이란다. 싹이 난 보리가 몰트malt이고, 다른 곡물로 만든 주류를 블렌드하지 않고 몰트만을 원료로 하여 단식 증류기로 만든 위스키 원액 그대로를 싱글몰트라고 부른다고 한다. 싱글몰트는 무슨 맛일까. 궁금해하며 상상해 볼 뿐이다.



'꿀꺽'을 거부하는 내 몸이 허락하는 음주 방식은 '찔끔'이다. 술 한 잔으로 몇 시간 술자리를 즐기는 것에는 자신 있는 나다. 그렇다, 내 음주 패턴에 그나마 맞는 술이 와인이었다. 이런 와중에 도서관에서 눈에 띈 책이 있었으니, '슬기로운 방구석 와인 생활'이라는 부제가 붙은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이었다. 집에서라면 나만의 속도로 음주를 즐길 수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풍미가 달라지는 다채로운 맛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좋아한다는 것은 일종의 돌발사고다.



임승수 작가는 이런 감미로운 문장으로 글을 시작했다. 이 책을 통해 술을 꼭 마셔야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와인은 향기를 탐닉하기에 더없이 좋은 술이기도 하다. 아직은 와인을 고를 때 알코올 도수가 낮은 위주로, 그리고 sweet 와인 위주로 고르고 있지만 그러면 어떤가, 내가 좋은 걸. 이렇게 나의 삶은 책을 매개로 아주 조금씩 확장되고 있다.




책 정보 :

《중국식 룰렛》 은희경 글, 창비 펴냄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임승수 글, 수오서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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