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진캠프(김민수)가 생방송 여행으로 대중과 소통할 수 있었던 숨은 이야기
어린 나이에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정말 심하게 받으면 불안장애가 찾아오기 쉽다. 경기도에서 부부 교사 생활을 하셨던 부모님은 자식의 교육을 위해 빚을 져서 서울 강남으로 거주지를 옮기셨다. 시골 자연 속에서 뛰어놀던 아이가 갑자기 바뀐 경쟁적인 교육 시스템에 적응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극심한 불안감 속에 본태성 진전증의 일종인 서경이라는 병이 생겼는데 글을 쓰는 특수한 상황에서 손이 떨리는 현상이다. 삐뚤빼뚤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해 학업에 큰 지장을 받았다. 특히 수학이 문제였는데,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시험 시간 안에 답안지조차 제대로 채우기 힘들었다. 방황을 심하게 했고 공부에 대한 압박감으로 예민해진 성격 탓에 불안장애가 발현하자 심리상담 센터를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큰 차도는 없었다. 옆 친구가 다리 떠는 것, 시계 똑딱이는 소리, 피부에 닿는 옷깃의 촉감 등 다양한 소재들에 신경이 날카로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부에 집중이 잘 안 되니까 이런 것들에 탓을 돌렸던 것 같다. 당시 이러한 시각, 청각, 촉각의 자극들을 극복하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리고 A 자극에 스트레스를 받다가 A 자극에 대해 무뎌지면 다시 B 자극에 온 신경이 곤두서는 전이 현상이 있었다. 예를 들어 1주일 정도 시계 똑딱이는 것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면 그게 무뎌지면서 다음 1주일 정도는 피부에 닿는 옷깃의 촉감에 선경이 곤두서게 되는 식이다. 의지와 무관하게 반복되는 이런 것들로 인해 심신은 피폐해져 갔다.
전교 춤 경연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다섯 명이서 당시 유명했던 그룹의 음악에 맞춰 한 달가량 열심히 연습했다. 그런데 갑자기 대회 1주일 전, ‘너 춤추면 키 안 큰다.’고 지나가며 던진 어머니의 한 마디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당신의 아들이 공부에 소홀한 것 같아 걱정하며 말씀하신 건데, 그게 가시가 되어 머릿속을 맴돌았다. 갑자기 그동안 연습했던 춤 동작들이 어색하게 다가왔다. 잊으려고 했지만 더 깊이 머릿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대회 전날 밤 불안감에 잠을 설친 후, 춤 경연 대회 무대 위로 팀원들과 올라갔다. 그때 전교생이 보는 무대 앞에서 공포감에 혼자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노래는 계속 흘러나왔기에 나머지 네 명의 팀원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겨우 춤을 이어갔고, 멈춰 서 있는 내가 자신들의 동선에 걸릴 때마다 원망의 눈을 하며 밀쳤다.
“쟤 왜 저래? 이상한 애야.”
수많은 관객들의 웅성대는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쥐구멍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시간은 정말 느리게 흘러갔다. 공황장애가 뭔지, 강박증이 어떤 건지 몰랐던 친구들에게 점차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던 학창 시절은 과거가 되고 자연스럽게 왕따가 되었다. 그렇게 또래들과 동떨어져 외로운 감정에 익숙해져 갔다. 학창 시절 내 색깔이 뭐냐고 물었던 심리상담사에게 어둠이라고 답했던 게 기억난다. 불안장애를 앓기 전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대부분 나에게서 등을 돌리게 되었다.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우정을 보며, 상대방이 처한 조건에 따라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동내 서점에서 마치 당시 소외된 내 모습처럼 서가 구석에 처박혀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던 책 한 권을 발견하게 되었다. 미국의 심리학 교수 웨인 다이어 박사가 쓴 ‘네 마음을 바꾸면 인생이 달라진다.’라는 책이었다. 지금은 절판되어 시중에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이 책은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꿨다. 외부의 요소에 삶의 결정권을 넘겨주지 말고 주도적으로 개척하며 끊임없이 성장해 나가야 한다는 책 속의 내용은 큰 울림이 되었다. 덕분에 불안장애로 피폐해져 갔던 심리상태의 많은 부분을 개선할 수 있었다. 책 한 권을 적재적소에 만나면 운명을 획기적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고 하는데, 이 책이 바로 그런 책 중 한 권이었다. 중학교 때 공부 못하던 학생이 갑자기 고등학교에 올라가 반 1등을 도맡아 하자 담임선생님은 적잖이 놀라셨다. 불안장애에 더 이상 괴로워할 필요가 없어진 것만 같았고, 점차 친구들 사이에서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잘 노는 인기 많은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한 번 발현된 불안장애는 시간의 흐름 속에 강도는 변화되었지만 삶 속에 기생충처럼 서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심리적 아픔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오랜 시간 심리상담 센터를 다니기도 했지만 당시 많은 빚을 갚느라 힘드셨던 부모님께 더 이상 심리상담 비용까지 부담 드리기가 싫었다. 대신 이런 고질적 불안장애를 스스로 완치하고 말겠다는 결심에 심리학 관련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하지만, 인간의 의식으로는 어쩔 수 없는 성적 무의식의 존재에 대해 설파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이해’는 그렇잖아도 불안했던 마음을 무력감과 함께 더 큰 불안감의 소용돌이 안에 갇히게 했다.
2002년 내 인생의 첫 대학교였던 육군사관학교에서 기훈 때 자퇴하고 나와 PC방에 박혀 게임만 하며 폐인처럼 살았다. 스타크래프트 게임 안의 가상 세계에 빠져 살게 되면 현실 속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온라인 게임에 계속 중독되어갔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해져 갈 때쯤 여행을 시작했다. 말이 여행이지 도피 여행이었다. 당시 어머니는 하라는 재수 공부는 안 하고 동네 PC방을 전전하고 다니는 나를 찾아다니시며 속상해 울기도 정말 많이 우셨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그런 불효자식이 없었다. 어머니의 시선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 반, 생각을 정리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싶은 마음 반에 국토순례를 하겠다며 집을 나왔다. 처음에는 모아두었던 돈으로 여행 경비를 충당했는데 돈이 떨어지자 하역일, 접시닦이일, PC방 알바 등을 하며 첫 장기 여행을 이어갔다. 1년 반가량 집과 떨어져 전국 방방곡곡을 정처 없이 떠돌았다. 출가 초기 대전광역시에서 몇 개월, 광주광역시에서 몇 개월, 부산광역시에서 몇 개월을 PC방에서 지내며, 게임을 하러 온 건지 여행을 하러 온 건지 모르게 지냈다. 그러다 어느 날 PC방 화장실의 거울을 봤는데 퀭한 눈에 초췌한 얼굴의 낯선 사내가 서있었다. 그게 바로 내 모습이라니...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었다. 그렇게 게임에 빠져 지내며 청춘의 시간을 좀먹고 있다는 걸 서서히 깨달아 갔다. 그러면서 점차 PC방에만 머무는 대신 온전하게 여행을 하는 비중이 자연스럽게 커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