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툴기에 뜻깊었던 유럽여행

사람은 부족한 과거의 모습을 딛고 끊임없이 성장하기에 아름답다.

by 용진캠프

이탈리아는 북부와 남부 사이에 경계선을 만들어 놓은 것도 아닌데 두 지역의 환경은 사뭇 달랐다. 밀라노 같은 북부 도시들은 뭔가 여느 유럽 도시들처럼 깔끔하고 현대식 건물들이 많아 도시적이었다면, 로마 같은 남부 도시들은 역사적인 유적지들은 많은데 거리에 쓰레기들이 널브러져 있고 부랑자들도 꽤 보여서 뭔가 거칠고 어두운 느낌을 받았다. 여행하며 만났던 현지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이탈리아 내에서도 북부 사람들이 남부 사람들을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피 빨아 먹고 사는 게으른 사람들로 안 좋게 보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이건 이탈리아란 나라가 남북으로 장화처럼 길쭉하게 생긴 게 한몫해 보였다. 위도 상 이탈리아 남부는 북부에 비해 훨씬 온난한 기후를 갖고 있다. 환경은 사람의 성향을 조금씩 바꾼다. 따뜻한 곳에 거주하는 남부 사람들은 부지런함보다는 느긋함을 미덕으로 여겼다. 그러다 보니 바쁘게 돌아가는 북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뎌졌다. 내가 여행할 시기에 유구한 관광 명소들이 곳곳에 있는 이탈리아 남부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임없는 곳이었지만, 의외로 낙후되어 소매치기도 많았기에 관광에 주의해야 할 곳이라는 오명이 붙어있었다. 실제로 로마의 한 호스텔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다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 다행히 나는 그런 경험을 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그들의 기후처럼 마음이 따뜻한 남부 이탈리아인들의 모습을 봤다. 로마에서 기차를 타고 나폴리로 가고 있다가 중간기점에서 모두 내리 길래 어쩔 수 없이 따라서 하차할 수밖에 없었다. 알고 보니 당시 내가 타고 온 기차는 거기까지만 운행하는 거였다. 문제는 그때 시간이 오후 10시쯤의 늦은 밤이었다. 거기에다가 내린 곳이 하필이면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으로 둘러 쌓여있는 어느 시골 역사였다. 애초에 정보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잘못된 기차를 탄 초짜 여행자는 나밖에 없었다. 이탈리아어만 고집하는 역무원에게 손짓발짓하며 갈아타고 가야 할 나폴리 행 기차가 언제 오는지 물어보았다. 알고 보니 다음 기차는 날이 바뀌고 아침이 되어야 온다는 거다. 그때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했다. 졸지에 역사에서 노숙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역사에서 여행경비를 아낀다고 노숙해본 적은 있었지만, 여기는 시골인데다가 주변이 숲으로 둘러싸인 야외라 모기 때가 극성이었다. 벤치에 앉아 눈을 붙이려고 하면 억센 모기 때들이 달려들어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때 누군가가 다가왔다. 이곳까지 오는 기차에서 내 옆에 타고 오셨던 백발의 할머니셨다. 영어는 전혀 못하셨고 이탈리아어로 “그라찌에~ 그라찌에~”(이탈리아어로 고맙다는 뜻이다.)만 연신 되풀이하셨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이게 무슨 말인가 했었다. 날 잡아끄시기에 역무원을 통해 무슨 말씀을 하시나 들어보니 역사에 혼자 남겨질 거 같았던 내가 너무 걱정되고 불쌍했단다. 그 할머니는 감사하게도 역사에서 멀지 않은 당신의 집에서 하룻밤 머물게 해주셨다. 낯선 이방인에게 조건 없이 베풀어주시는 할머니의 호의에 마음이 참 따뜻해졌다. 그날 밤 할머니가 내어주신 방 침대에 누워 창가를 보자 수많은 별들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누군가는 특정 지역의 사람들에 대해 들리는 소문에 기대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밤하늘에 무수히 많은 별들이 각자 고유한 빛을 내듯이 한 지역에도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세상은 우리가 직접 경험하기 전에 함부로 정의내리고 재단할 수 없는 법이다.


스페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여행지는 바르셀로나였다. 바르셀로나에서 하늘로 우뚝 솟아있는 거대한 예술작품을 보았다. 바로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예술혼이 담겨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다. 기하학적 문양의 이색적인 이 건축물은 그 빼어난 건축미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한 폭의 사진으로 담기기 힘들 정도로 웅장한 규모인데다가 조각을 빚듯이 예술혼을 담아 쌓아 올리고 있기에 1882년부터 지금까지 100년이 훌쩍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지어지고 있다. 가우디 사후 100년인 2026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가 최근 건축 기술의 발전으로 속도가 붙었다고 한다. 완공되는 해를 기념하여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무료 개방한다고 하니 이 시점을 맞춰 스페인 바르셀로나 재방문 이야기를 생방송으로 송출해볼 예정이다.

사그라다파밀리아.jpg 안토니 가우디의 예술혼이 담긴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사실 바르셀로나 도시 곳곳에 가우디의 숨결이 스며들어 있었다. 이 천재 건축가 가우디는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들에 다소 생소할 것 같은 곡선미를 절묘하게 녹여냈다. 사그라다 파밀라아 성당 외에도 구엘 궁전, 카사 밀라 등 그의 손에 의해 탄생한 곡선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이곳을 찾는 관광객을 매료시킨다. 건축물에 국한되지 않고 자연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가우디 특유의 예술 작품들로 가득한 구엘 공원이란 곳도 있다. 이곳은 원래 가우디의 오랜 친구이자 후원인 구엘의 사유지였던 곳인데 가우디의 예술 작품들을 대중과 함께 기리고자 개방하였다고 한다. 몇몇 작품들은 화려하면서도 기이하다는 느낌까지 받았는데, 기존의 건축술에 익숙해져 있던 좁은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특히 이곳에서 아름다운 건축물을 딛고 올라가 보면 지중해 바다를 끼고 있는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다 들어와서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개운해진 기분으로 찾은 숙소는 시원한 바다가 보이는 한인 민박집이었다. 이곳은 한국 여성분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개조해 민박집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어학연수 같은 걸 왔다가 스페인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바르셀로나에 아예 정착하게 되었단다. 그녀의 자상한 안내 덕분에 편안한 마음으로 머무를 수 있었지만 생소한 게 한 두 개가 아니었다. 특히 오후 2시에는 무더운 날씨를 피해 모두 소등하고 낮잠 자는 시에스타 제도가 있었다. 낮잠 자야 되는 시간이라고 하기에 그들과 마찬가지로 낮잠을 청하며 눈을 감아 보았다. 갑자기 한국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 정착해 살아가는 그녀의 용기가 너무 부러웠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난 언제 저렇게 결단력 있고, 용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시간과 함께 보리와 벼는 익어가고 사람은 성숙해 간다. 개인적으로 사람의 성격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을 믿지 않는 편이다. 그건 주어진 환경 속에 갇혀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는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꿈을 품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인간은 멈추어 있기보다 끊임없이 발전해 나가기 마련이다. 여러분과 나는 여행을 통해 매 순간 새로운 세계를 모험하며, 낯선 환경을 경험해 보고 있다. 이 글을 계속 읽어나가며, 우리는 과연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지켜볼 일이다.


흔히 사람들은 프랑스하면 파리를 떠올린다. 파리는 베르사유 궁전,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등 볼 것도 많고, 거리 식당에서 먹는 음식들도 대부분 맛있었다. 유럽 관광의 중심지 중 한 곳으로 불릴 만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파리보다는 남부 프랑스의 한적한 해안가 도시들이 더 좋았다. 유레일 패스로 이탈리아 제노아에서부터 해안 기차를 타고 모나코 공국을 경유해 프랑스 남부 도시 니스, 칸까지 가는 내내 창가로 보이는 드넓은 지중해가 반겨줬다. 햇살에 반사되어 영롱하게 빛나는 지중해의 물결은 명주실처럼 자르르한 윤기를 머금고 있었다. 사실 니스와 칸은 모나코 공국과 나라만 달랐지 유사한 부분이 많았다. 도시가 모두 맑고 잔잔한 지중해를 품고 있었고 해수욕장 가에 형성되어 있는 부두에는 값비싼 흰색 요트들이 정박해 있었다.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이 요트들은 대부분 개인용 요트라고 한다. 이 도시에 여유롭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자가용 고급 요트를 사놓고 휴일이 되면 타고 지중해 바다로 나가 낚시나 수영을 즐기곤 했다. 칸과 니스 모두 풍광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왜 많은 예술가들이 여생을 즐기러 이 두 곳을 찾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재밌던 점은 두 군데 모두 누드비치가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그 누드비치는 나이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미성년자도 편하게 들어갈 수가 있었다. 이쯤해서 이 글을 읽고 있을 미성년자 친구들의 초롱초롱해진 눈빛이 아른거린다. 나 역시도 호기심 때문에 그랬었으니까. 그날 따스한 햇살에 많은 시민들이 거리나 공원 곳곳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기에 누드비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졌다. 칸느 같은 경우 워낙 작은 도시라 머물던 호스텔에서 걸어서 불과 7,8분 거리에 누드비치가 있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과감하게 성큼성큼 누드비치로 걸어 들어갔다. 물론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이곳의 규칙을 준수해서 과감하게 입고 왔던 옷을 벗어던지고 말이다. 결과는 이랬다. 누드비치는 실상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천국이다. 누드비치를 한 바퀴 둘러보며 신기하게도 영화 속에서 봐왔던 비키니 몸매의 젊은 여성은 단 한 명도 못 봤다. 젊은 남성 역시 나 혼자인 것 같았다. 그 대신 신기하게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꽤 많았다. 연세 지긋이 드신 어르신들께서는 태초의 아담과 이브가 되어 지중해의 푸른빛과 어우러진 따스한 햇살 아래 몸을 누이고 계셨다. 갑자기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속살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는 그들이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그래, 이게 바로 인생이다.’ 남들이 어떻게 바라보는지 신경 쓰기보다 삶의 순간을 온전히 만끽하는 그분들의 인생 내공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있었다.


누드비치에서의 깨달음을 뒤로한 채 첫 번째 유럽 여행을 무사히 끝마쳤다. 쑥스러움에다가 서툰 영어회화 실력에 외국인 친구들과 원활하게 소통하지도 못했고, 다소 어리숙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런 소싯적 모습이 있었기에 이로부터 10년이 넘게 흐른 지금, 한국의 시청자분들과 생방송으로 함께 세계여행하며 다양한 국제 교류 에피소드를 만들어 갈 수 있게 되었을 거다. 사람은 부족한 과거의 모습을 딛고 부단히 성장하기에 아름답다.

세계여행유튜버15.png 유튜브 '세계일주 용진캠프' 생방송 국제교류 세계여행 이야기


※ 다음 챕터에 계속 이어 나가겠습니다.


카카오 브런치 작가이자 여행 유튜버 세계일주 용진캠프는
현재까지 6대륙 101개국 세계여행 중입니다.


출판 및 강연 문의 : especialo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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