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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눗방울 Aug 16. 2021

우울증/불면증에 도움이 되었던 것들

8. 마음먹기 편과 행동 편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하면서, 막상 우울증에 대한 신빙성 있는 정보를 찾기는 정말 쉽지 않다.

나 같은 경우는 전문가나 의사들의 말 보다 우울증을 직접 경험하고 회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참고하고 싶었는데 제대로 된 경험담을 찾기가 힘들었다. 물론 사람마다 우울증의 원인이 다르고, 또 그 증상도 다르게 나타나다 보니 내 경험이 모두에게 적용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분들이 있을까 해서 적어본다.


**마음먹기 편


1. 처음부터 증상의 원인을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증상의 패턴을 파악한다.


처음에는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을 많이 했었다. 심리상담도 다녀보고, 혼자 이리저리 고민도 해봤는데 그럴수록 마음만 복잡해지고 증상도 악화됐다. 어차피 우울증이나 불면증은 유전과 성격과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온 경우가 많아서 원인을 찾기는 쉽지 않다. 나도 이제야 이런이런 이유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짐작만 해 볼 뿐이지 아직도 정확한 원인은 찾지 못했다.


원인 찾기를 포기한 다음부터는 내 증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려고 했다. 감기 같은 경우는 의사가 내 몸을 관찰한 다음 '기침이 나고 콧물이 나고 목과 코 안이 부어있네요. 감기입니다' 혹은 '지난번보다 목이 더 부어있네요. 더 센 약을 먹어야겠어요'라고 꼭 집어서 내 상태를 진단해준다. 하지만 정신과 치료는 다르다. 의사가 내 뇌나 마음을 열어서 들여다볼 수가 없다 보니, 환자의 설명이나 서술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서 치료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환자인 내가 나 자신의 증상을 잘 들여다 보고 의사에게 가서 최대한 잘 설명할 때 치료의 결과도 좋았다. 지난 6일 동안 증상이 악화됐었는데 병원에 가는 당일 상태가 조금 좋아졌다고 해서 '저 일주일 동안 상태가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를 하면 의사는 환자의 말에 따라서 약을 줄이기가 쉽고, 그럼 내 증상은 더 안 좋아지는 게 당연하다.


앞선 글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나는 불면증이 먼저 온 후, 우울증이 겹쳐 생긴 케이스다. 그래서 우울증의 직접적인 원인은 불면증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다음엔 지금까지 불면증을 겪었을 때의 상황들과 심해질 때를 관찰해보니 마음속에 불안함이나 압박감이 있을 때 뇌의 스위치가 꺼지지가 않아서 잠을 못 자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내 몸을 관찰하다가 또 느낀 건, 뇌와 몸이 휴식모드로 빠르게 전환이 안된다는 거였다. 삶을 언제나 '생존 모드'로 살다 보니, 집에서 쉴 때에도 몸과 뇌는 계속 긴장하고 있었다. 실제로 교감신경/부교감 신경을 검사할 때마다 8:2 정도로 불균등한 수치가 나왔다. 그래서 무의식 중에 느끼는 마음의 불안함이나 나도 모르게 하고 있는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는 쪽으로 노력의 방향을 맞췄다.  


2. 내가 아프다는 걸 인정한다.


그다음으로 도움이 됐던 건, 내가 아프다는 걸 인정한 거다. 이게 내 의지의 문제라거나 나약함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 내 뇌가 아파서 생긴 문제라는 걸 인정하는 거다. 그리고 내 뇌는 지금 아픈 뇌이기 때문에 내가 하는 생각들도 부정적이거나 안 좋은 쪽으로 편향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인정했다.


예를 들어, '우울증이 평생 낫지 않아서 나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이렇게 불행하게 살 것 같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전에는 이런 생각이 합리적 진실이라고 생각해서 더욱 힘들어했는데, 내 뇌가 아픈 걸 인정하고 나니까 '그래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들지만, 내 뇌는 지금 아픈 뇌야. 그러니까 이 아픈 뇌가 하는 생각이 맞는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어. 아무래도 아픈 뇌이다 보니까 더 부정적인 쪽으로 비합리적인 생각을 했을 수 있겠지'라는 식으로 한 발자국 떨어져서 지켜볼 수 있게 됐다. 나 자신이나 상황에 대한 부정적이고 우울한 생각이 내 마음을 지배할 때마다, '그래 이건 아픈 뇌의 생각이다. 아픈 뇌가 부정적으로/비합리적으로 해석한 결과물일 수 있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니 마음을 달래기가 한결 수월했다.


3. 완치를 목표로 삼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우울증/불면증과 같이 덜 불행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2번 단계를 지나고 나자 생긴 문제는 '그래, 나 아프다. 아파서 이런데 어쩌라고? 어차피 난 아파서 잘 낫지도 않는다고!!!'라는 식의 패배감이 생겼다는 거다. 내가 아픈 걸 인정한 것 까진 좋았는데, '전혀 안 아픈 과거의 나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으니 '완치가 안되면 어떡하지? 그럼 난 평생 실패자가 되는 건가?' 하는 두려움이 급습했다. 내가 정말로 낫기 시작한 건 오히려 '완치가 안될 수도 있다. 안되어도 괜찮다'라고 마음을 바꿔먹었을 때다.


생각해보면, 감기도 한 번 걸렸다가 또 오기도 한다. 또 계절성이나 음식/동물 알레르기도, 허리 디스크도, 신장이나 간이 안 좋은 것도 결국 '완치'의 개념은 없고 '평생 관리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어차피 신체 전체가 건강한 사람은 잘 없고, 다들 어디 한 군데씩 약한 곳은 있기 마련이다. 나도 평소 기관지가 약해서 편도염에 자주 걸리고 봄마다 알레르기 약을 달고 산다. 우울증이나 불면증도 이런 병들처럼 그냥 '관리하고 살아야 하는 조금 귀찮은 병 중 하나'라고 생각을 바꾸니까 마음의 부담이 훨씬 덜했다. '나는 그냥 조금 예민하고 과긴장을 잘하는 뇌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 나 스스로를 보살피기도, 증상을 다스리기도 좀 더 편했다.



 **행동 편


솔직히 행동 편은 할 수 있는 오만가지 일을 다 해본 것 같다. 특히 불면증이 심해지면 우울증이 이어서 심해지는 패턴으로 악순환이 계속돼서, 불면증 먼저 잡으려고 노력을 많이 해봤다. 자기 전에 따뜻한 물로 샤워하기, 멜라토닌/타트체리 먹어보기, 각종 영양제, 우황청심환, 별별 것들을 다해봤는데 다음 것들이 제일 도움이 많이 됐다.


1. 하루에 할 일을 하나씩 정한다. 정말 사소한 걸로. 그리고 그거 하나는 꼭 한다.


우울증과 불면증이 함께 오고 나니 무기력증이 너무 심해져서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집에만 박혀 있으면 낮에는 스트레스받을 일이 없으니 좋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무기력증이 심해지고 불면증도 더 심해졌다. 그래서 나중엔 하루에 할 일을 하나씩 정해놓고 그 하나는 꼭 했다. 정말 작은 것들이었는데 예를 들면 뒷산 20분 산책하고 오기, 점심 요리해서 먹기, 낮에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빵집에 가서 빵 사 오기, 집 앞 카페에 나가서 30분 책 읽고 오기 등등. 솔직히 우울증이 심할 땐 하루에 이거 하나 하는데도 큰 노력이 필요했다. 그래도 하루에 하나씩 계획을 세우고 지키는 것만으로도 '내가 내 인생을 관리할 수 있다'는 느낌을 줘서 제법 도움이 됐다. 낮에 햇빛을 보고 오면 불면증이 조금 완화되는 것 같아서 대부분 낮에 한 번씩 밖에 나가는 걸 계획으로 삼았다.


2. 명상한다.


나는 원래 명상을 왜 하는지 이해를 1도 못했던 사람이다. '차라리 명상을 할 시간에 운동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인생 살면서 도 닦는 기분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진짜로 명상하면서 도까지 닦아야 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교감신경/부교감신경 검사를 해보니 교감신경이 너무 활성화되어 있다고 나왔고, 의사 선생님은 몸이 이런 상태면 내가 절대로 나을 수 없다고 했다. 지금은 약으로 증상을 눌러놓은 거고, 약을 끊으면 바로 또 문제가 튀어나올 거라고. 교감신경/부교감신경 검사를 살면서 몇 번 해봤었는데, 그때마다 난 교감신경이 극도로 높게 나왔다. 근데 항상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고 특별히 부교감신경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는 생각을 못했다. 내가 내 몸과 뇌의 과긴장을 부추겨서 살아가고 있었고, 그래서 항상 남들보다 더 잔병치레가 많고 인생에 자잘하게 힘들고 피곤한 일이 많았다는 걸 이때서야 알았다.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하는 데 좋다길래 시작한 게 명상이었다. 난 보통 유튜브 명상 채널의 도움을 많이 받는데 힐러 혜랑/숨 쉬는 고래/마인드풀 tv 채널을 많이 듣는다. 처음엔 불면증 때문에 잠을 자려고 시작한 거라서 잠 자기 전에 리클라이너에 기대서 많이 했고, 요즘엔 마음이 시끄러울 때, 유난히 힘든 하루를 보냈을 때, 일을 정말 열심히 하고 난 다음 등등.. 마음의 에너지를 꽤 소비했다 싶으면 꼭 명상을 한다. 처음엔 조용한 곳에서만 했는데, 요즘엔 지하철에서 앉아서도 하고, 서서도 한다. 물론 조용한 곳에서 명상 자세로 집중해서 하면 좋겠지만, 어차피 난 내 마음을 돌아보고 마음의 에너지를 채우려는 목적으로 명상을 하는 거니, 그 목적만 달성할 수 있으면 어디서 어떤 자세로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 우울증/불면증에 정신과 약 다음으로 도움이 제일 많이 됐다. 하루를 시작하고 끝낼 때 샤워로 몸을 깨끗이 하는 것처럼, 마음을 씻는 활동이라고 생각하고 일상화하면 정말 좋은 것 같다.


3. 운동한다.


이것도 너무 교과서 같은 말이라서 민망하지만, 운동은 확실히 도움이 된다. 나는 처음에는 몸에 다친 곳이 있어서 운동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집 앞에 산책만 다녔다.


몸이 회복된 다음부터는 처음으로 PT를 받아봤는데, 처음엔 정말 하기 싫었다. 특히 불면증으로 몇 시간 못 잔 다음 날에 운동을 가면 정신적 피로도가 더 심했다. 몸의 사이클을 바꾸는 데는 최소 100일 정도가 걸린다길래 3달만 해봐야지 하고 시작했는데, 두 달이 지난 지금 내 상태는 두 달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운동이 우울증이나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면도 있겠지만, 체력이 붙으면서 힘든 걸 견디는 마음의 힘도 좋아지는 것 같다. 운동이 불면증에는 바로 효과를 보인다는 분들도 있던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에는 운동을 하고 온 날 더 잠을 못 잤다. 너무 저녁에 운동을 하면 몸이 각성된다길래 이른 오후에 운동을 다녀와도 잠을 못 잤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몸의 사이클이 천천히 맞춰지는 기분이다. 아직도 불면증은 완전히 낫지 않았지만, 일주일에 3, 4일은 새벽 네다섯 시까지 깨있었던 두 달 전과 비교하면 정말 장족의 발전을 했다.


4. 영양제

사실 영양제는 효과를 잘 못 봤다. 물론 장기 복용하면 도움은 되겠지만 증상이 심할 땐 정신과 약을 먹는 게 맞는 것 같다. 온갖 영양제를 다 먹어봤는데, 요즘 정착한 패턴은 마그네슘/햇빛을 못 본 날 비타민D/락티움/나트라 슬립 정도다. 근데 정말 솔직히 말하면, 도움이 되는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고 아리송하지만 마음의 안정을 위해 먹는 게 크다.  




결국 모든 것의 시작은 내 몸과 나 자신을 잘 관찰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우울증이 오면 아침에 침대에서 나오는 것도, 씻는 것도, 밖에 나가서 식료품 하나를 사 오는 것도, 너무너무 힘이 든다. 일상적인 것들을 하기 위해서 엄청난 다짐을 하고 힘을 내야 한다. 정신과 약을 먹는다고 우울과 무기력함이 한순간에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이런 '일상적인 일'들을 '조금 덜 힘들게'할 수 있다. 결국 정신과 약을 먹는 이유는 이렇게 일상적인 일을 하는 데 드는 힘을 아낄 수 있게 해 주어 남는 힘으로 나 자신을 관찰하고 돌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TV를 보면 불면증이 더 심해지니 차라리 재미없는 책을 보라는 게 보통 전문가들의 의견인데 나의 경우엔 그렇지 않았다. 내 불면증의 직접적인 원인은 끊임없이 돌아가는 뇌 때문인데, TV를 보면 외부 자극에 집중하면서 뇌의 목소리가 잠잠해지기 때문에 오히려 잠이 더 잘 온다. TV는 바보상 자기 때문에 내 뇌도 바보로 만들어주고, 그렇게 내 뇌가 단순해져야 잠이 온다. 책의 경우에는 읽으면서 오히려 더 철학적인 생각에 빠지고 나를 반추하게 되어서 별로였다. 책을 읽는 행간마다 계속 나를 돌아보게 된다. 약 덕분에 회복한 에너지를 사용해서 이런 나만의 패턴을 읽어낼 때부터 진짜 치료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우울증과 불면증은 분명 힘든 병이지만 나아질 수 있는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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