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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눗방울 Sep 03. 2021

적당히 물렁하게, 적당히 게으르게

9. 내가 소진되지 않는 지속 가능한 삶이란 - 1

단단하다고 강한 것은 아니다.


단단한 게 강한 거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멘탈도 단단하면 강한 것이고, 몸도 단단하면 강한 거라고 믿었다.


지금까지 자주 '멘탈이 강하다'는 말을 듣고 살았다. 아마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나 인생에서 슬럼프가 왔을 때 주저앉아서 울고만 있었던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일 것 같다. 비록 결과가 나타나는 데 까지는 시간이 걸렸을 지라도, 언제나 뭔가를 새롭게 시도했고 도전했고 부딪혔다.


살다 보면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때가 있다. 학교에서나 회사에서나 언제나 평가가 꼬리표처럼 붙어오기 마련이다. 부정적인 피드백을 듣고 나면 보통 기분이 상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피드백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됐다. 최대한 내 감정은 빼고 피드백의 핵심만 파악해서 나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만 흡수하려고 했다. 좀 변태 같기도 하지만, 나는 부정적인 피드백을 약간은 즐기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나는 발전 욕구가 강한 사람이라서 항상 스스로를 객관화해서 부족한 부분을 찾으려고 했는데, 혼자 하기는 힘든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나중엔 주위에서 쓴소리를 해 줄 때 오히려 좀 기쁘기까지도 했다. 주위에선 내 이런 면들을 보면서 '멘탈이 강하다'라고 했나 보다.  


그런데 폭풍 같은 나날들을 보내고 난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은, 단단하다고 강한 건 아니다. 단단하면 오히려 깨지기가 쉽다. 나도 단단하게 살아보려다 산산조각이 났다. 오히려 갈대는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지만 폭풍우도 견뎌내는 유연함이 있다. 어려움에 부딪히거나 슬럼프가 왔을 때, 혹은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을 때, 그 하나하나의 무게를 온전히 견디면서 단단하게 버텨내는 게 능사는 아니다. '그럴 수도 있지 뭐~' 하고 유연하게 넘겨 내기도 하고, 슬프면 슬픈 대로 갈대처럼 소리 내어 울고 기쁘면 기쁜 대로 표현하고, 화나면 소리를 질러보기도 하고. 그렇게 이리저리 적당히 흔들리며 너무 진지하지 않게 살아가는 게 '정말 강한 사람들'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너무 진지하게 말고 대충 살자.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살아도 괜찮다. 단단해서 깨어지느니 이리저리 나부끼면서 사는 게 낫다.




튀어나가려는 마음


내 강점은 실행력이다. 내 오랜 친구는 나를 두고 '행동이 미래를 이끈다!'를 몸소 보여주는 엄청난 행동파라며 자주 신기해했다.  


예를 들어서 '운동을 좀 해야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 일주일 내에 운동을 찾아서 등록한다. 외국어 실력이 녹슨 것 같다고 생각하면 또 바로 학원을 수강한다. 그리고 또 이상하게도 타고난 인내심과 꾸준함이 있어서 그렇게 '실행'한 것들은 보통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실행력이 있다는 건 좋은 거니까, 내가 왜 이렇게 실행력이 뛰어(?) 난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실행력을 부채질하는 애가 불안함이었다는 거다. 불안하니까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계속 뭔가를 실행하고 행동에 옮겼다. 생각만 하는 걸로는 인생이 바뀌지 않을 테니까.


불안하니까 취업 원서를 50개를 썼고, 불안하니까 졸업시험이 끝난 지 1주일 만에 진로탐색을 시작했다. 남들은 다 쉬어가는 방학 같은 시기에 나는 또 가만히 있기는 몸이 근질거리고 불안해서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고, 잡코리아며 사람인이며 하는 취업공고 사이트에 내 이력서를 올리고, 헤드헌팅 회사들을 추려서 또 업데이트 한 이력서를 돌리고, 링크드인 계정을 만들었다. 취업을 한 후에는 실력이 녹슬까 불안해서 통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애써 공부를 했다. 모든 기회를 잡을 만반의 준비를 갖춰놔야 마음이 편했다.


불안을 기반으로 한 실행력은 계속되면 강박이 된다. 나중엔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당일에 센터를 찾아 등록하고 그날부터 운동을 시작하지 않으면 마음이 초조했다.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그 당일로 서점에 가서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렸다.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해도 하루면 배송이 오는데, 그 하루를 참지 못해서 시내 서점을 무리해서 다 돌았다. 마음에 힘이 없어도 출퇴근 길에는 계속 영어 팟캐스트를 들었다. 가요를 듣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가면 마음이 찝찝하고 불편했다. 병원을 찾아갈 즘에 해서는 몸과 정신이 너덜너덜해져서 팟캐스트도 들을 수 없었지만 음악도 들을 수가 없었다. 음악의 비트가 조금만 쿵쿵거려도 가슴이 따라서 쿵쿵 떨어졌다.


아마 이전과 비교해서 요즘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이 '튀어나가려는 마음'에 더 이상 올라타지 않는다는 거다. 이전에는 튀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거기에 바로 반응해서 이것저것 일을 벌였다. 이제는 뭔가를 실행하고 싶은 충동이 들 때마다 한 번 더 생각한다. 지금 내 몸과 마음에 이것을 실행할 정도의 에너지가 있는가? 내 신체와 정신은 생각보다 외부 자극에 민감해서, 오히려 힘든 하루를 보내고 난 후에 힘이 넘치기도 한다. 성취감이며 내 일을 잘 해냈다는 뿌듯함, 바쁘게 하루를 잘 살아냈다는 그런 느낌이 들면 실제로는 몸과 마음에 에너지가 없을지라도 자꾸 에너지가 뿜 뿜 넘치는 것 같고,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튀어나가고 싶어 진다. 이런 가짜 에너지에 속지 않으려면, 이상하게 에너지가 넘칠 때 오히려 '진정해 친구야'하면서 그 흥분을 가라앉혀줘야 한다. 그래서 요즘은 하루를 특별히 충실히 보낸 날에는 명상을 한다. 명상을 하면 그제야 몸이 이완되면서 피곤함이 느껴진다.


내가 소진되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내 에너지와 자원은 한정적이다. 사회에선 계속 최선을 다해야 후회가 남지 않는다고 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내가 소진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하루 이틀 살다 죽을 것 아니니까. 소진되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열심히 살자. 요령도 피우고, 가끔 에라 모르겠다 하고 드러눕기도 하고. 조금 게으름을 피워도, 적당히만 해도, 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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