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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눗방울 Jun 29. 2022

따뜻하고 포근한 곳으로 가자, 함께

나의 어두운 밤, 밝은 달빛이 되어주었던 친구에게

슈와 나는 열여섯 고등학교 교실에서 처음 만났다. 지금 내 나이가 서른둘이니 살아온 세월의 꼬박 절반만큼을 함께 한 셈이다.


지금이야 인생의 절반을 함께 한 친구이지만, 우리는 고등학교 1학년 첫 학기가 다 지나갈 무렵까지도 서로 말 한마디 섞지 않은 사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내가 처음으로 슈에게 말을 걸었던 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날은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성적표를 받는 날이었다. 당시에는 '성적 등급제'라고 하여 전교생의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1등급부터 9등급까지 조 줄세우는 시스템이 있었다. 결국엔 상위 몇 프로에 드느냐에 따라 나의 등급이 결정되는 것이었으므로 모집합의 수, 즉 학교의 전체 학생 수가 많을수록 유리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가 다닌 학교는 학생 수가 너무너무 적었다. 엄마들의 치맛바람이 휘날리기로 유명했던 학교에서 내가 처음 받아 든 성적표는 7등급이었다. 사회 7등급.


7등급은 백분위로 따지면 89%에 속하는 수치다. 열여섯의 나는 적어도 사회과목에 있어서는 하위 10% 학생이었다는 뜻이다. 7이라는 숫자가 현실감이 없어 멍하니 눈을 꿈벅거리고 있는데, 내 앞에 앉아있던 친구도 본인의 성적표를 보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걸 목격했다. 한 번도 말을 걸어본 적 없 친구였지만 내 성적표의 7이라는 숫자에 이상한 용기를 얻어 그 친구를 쿡쿡 찌르곤 소곤소곤 속삭였다. "야, 나 사회 7등급이다?" 내 말을 들은 슈는 잠시 멈칫하더니 여전히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나에게 다시 조용조용 속삭였다. "사실은 나도 7등급이야"


고백하자면 슈의 사회 등급이 7등급이었는지, 6등급이었는지, 8등급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성적표에 써진 숫자는 크게 다르지 않았고 우리가 하위 10% 즈음에 준하는 인간이라는 걸 서로 공유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큰 비밀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슈에게 온갖 자잘한 마음들을 모두 터놓기 시작했다. 슈는 내가 하위 10% 인간이라는 걸 알고도 아무런 동정도 비난도 하지 않았으므로 나를 있는 그대로 내비쳐 보일 수가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 나는 이 친구를 사랑했던 것 같다. 어릴 때의 미숙한 방식으로 있는 힘껏 사랑했다. 슈의 생일에는 몇 달 전부터 하루에 한 장씩 편지를 써서 책으로 엮어줬다. 얼마 전 슈가 말하길 그 편지에는 '나보다 오래 살아달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걸 보면서 네가 떠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알았어"라고 말하는 서른두 살의 슈를 보면서 열여섯의 나는 그런 친구였구나, 열여섯의 너는 저런 걸 벌써부터 알아차릴 수 있는 친구였구나, 하고 생각했다.


스무 살이 되어 슈와 다른 대학교에 가게 되었을 때, 성인이 된다는 설렘만큼이나 아쉬움과 걱정도 컸다. 슈는 나와 자매와 같은 존재였으므로 이 친구 없이 타지에서 대학생활을 혼자 할 수 있을지, 또 진학한 대학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가 멀어지는 것은 아닐지 여러 번 고민했다. 화려하게 '팡!' 터지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불꽃놀이 같던 대학교 축제가 한바탕 지나간 초여름 무렵, 나는 슈가 다니던 대학교를 찾아갔다. 그곳 구석의 조그만 술집에서 우리는 오래간만에 얼굴을 마주 보고 술을 마셨다. 그 술집은 지금 생각해도 독특한 곳이었는데, 주인 언니가 본인도 술을 마시면서 요리를 하고 서빙을 했다. 주인장이 취해 있으니 손님들도 하나 둘 덩달아 취하기 시작했고, 종국에는 그 작은 술집에 제정신인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었다. 만취해 버린 나는 반수를 결심한 슈를 껴안고 등을 토닥이며 엉엉 울고 잔뜩 취한 주인장 언니도 흐물흐물한 걸음걸이로 다가와 계속 새로운 안주를 주고 또 그 작은 술집에서 하필 우연히 만나게 된 다른 고등학교 동창도 우리 테이블로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와글와글 쏟아내고 우리와 주인장 언니 모두 어질어질한 상태로 그곳에서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슈가 반수를 끝내고 바로 옆 학교로 온 후부터 우리는 자주 만나 좋아하던 가게에서 코코아를 마시고, 전시회를 가고, 서로의 속상한 일을 하소연했다. 남들은 남자 친구와 가던 매직아트 전시회에 둘이 놀러 가서 서로의 사진을 잔뜩 찍어주고 온 날, 나는 잔뜩 들뜬 기분으로 길거리에서 비눗방울을 샀다. 어릴 때 좋아하던 비눗방울처럼 내 인생도 톡 건드리면 터질 것만 같이 반짝이는 무지갯빛 방울로 가득했다. 목표가 없어 공허했고 어느 길에도 확신이 없어 아슬아슬했지만 그래서 더욱 해맑았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길거리에서 비눗방울을 불었다. 어린애처럼 비눗방울을 불어대는 나를 보고 슈는 부끄러워했고 나는 그런 슈를 보며 깔깔 웃었다.


그 후로 거진 10년이 지나서야 그 당시 슈에게는 내게 미처 말하지 못한 힘든 일들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인간적으로는 슈보다 조금 더 늦게 성숙하여서 슈가 20대에 느꼈을 감정들을 30대에 들어선 후에서야 조금씩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와서는 어쩌면 그때의 너는 나를 감당하기 벅찼을 때도 있었겠구나, 오히려 나 때문에 더 외로웠던 순간들도 있었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30대의 나는 이전보다 조금 더 물렁하고 따뜻해졌으니.


요즘 들어서는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 얼마 전엔 사람이 콩나물처럼 꽉꽉 들어찬 지하철에서 몇십 분 동안이나 불규칙한 간격으로 "-아!"하고 괴성을 지르는 한 남성을 보았. 안 그래도 모두가 지쳐있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신경이 쭈뼛 서게 만드는 날카로운 고함 소리가 들릴 때마다 사람들의 눈이 그쪽으로 쏠렸다. 본래 같았으면 나도 별 관심을 두지 않거나, '거 참 시끄럽네' 했을 것 같은데 그날은 왠지 마음이 쓰였다. 어딘가 불편해서 본인이 원치 않는데도 비명에 가까운 고함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정말 어딘가 아파서 참고 참다가 저런 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혹시나 그렇다면 고함을 지르는 저 순간이 얼마나 힘들고 민망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른 아침부터 어딜 저렇게 바삐 가야 하는 사연이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자 자꾸만 "어-아!" 하는 고함소리가 마음 아프게 들렸다.  


엄마와 오랜만에 통화를 하는데 엄마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예전에는 걸음걸이가 불편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불편하구나, 하고 금방 잊었는데 요즘엔 저 사람이 어딘가 아프진 않을까, 저 사람이 아프다면 저 가족들도 가슴 아픈 순간들을 같이 견뎌오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든다고 했다. 엄마는 "예전이었으면 나 잘난 줄만 알고 남들한테 관심도 없이 살았을 텐데, 내가 아파보고 나니 새로운 세상이 열렸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세상이 일상의 아픔이 없던 세상보다 오히려 조금 더 편안하며 행복하고 평화롭다고 이야기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다 "엄마, 나도 모든 일을 겪어내고 난 요즘엔 이전과는 다르게 조금 더 조심스러운 시선으로 세상을 살펴보게 돼"라고 말했다. "이런 내가 싫지는 않은데 가끔은 왠지 내 나이스럽지 않게 낡고 늙어진 것 같은 기분이야. 난 아직 젊은데. 더 파이팅이 넘쳐야 할 것 같은데."


수화기 너머로 잠시 고민하던 엄마는 이렇게 답했다. "그런 것에는 나이가 상관이 없어. 나이가 많아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나이가 젊어도 빨리 깨닫는 사람들도 있지. 다만 그런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사람들은 좀 더 빨리 '진짜'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된 거란다. 그때부터 나만이 찾을 수 있는 진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문이 열리는 거야."


전화를 끊고 나니 카톡이 울렸다. '이전보다 늙거나 낡아진 게 아니라 인간적이고 따듯해진 거'


엄마도, 나도, 슈도 이전보다 인간적이고 따뜻한 새로운 세상을 살고 있다. 엄마는 아파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나는 모든 게 갖추어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와 열심히 자아 찾기에 돌입한 슈는 이리저리 깨지는 것이 결국엔 새로운 기회의 포문을 여는 지름길이므로, 세상에 깨어지는 것이 두렵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걸 새롭게 깨닫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함께 더 평화롭고 따뜻한 곳으로 나아가고 있다. 자주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불지만 그런 날들 속에도 건빵 속 별사탕 같은 포근한 순간들이 있다. 사랑하는 나의 친구도, 나도, 엄마도, 우리 모두 새롭게 문을 열고 나아간 세상에서 조금 더 편안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일렁이는 바다에 동동 누워서 해수가 우리를 데려가는 곳으로 편히 몸을 맡기고 폭신한 햇살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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