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 않을 비가 내렸다.
매주 목요일은 눈뜨면 곁에 와있는 아침이 반갑다. 잠들어 있는 도서관의 단잠을 깨우러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겸의 수영 특강이 9:30으로 옮겨지면서 홀가분한 몸으로 갈 수 있어 콧노래까지 난다. 짧아진 머리는 감기도 말리기도 편하다. 소소한 행복이 모인 아침. 지난주에 빌렸던 책꾸러미를 데리고 집을 나선다.
내가 도서관에 가는 시간이 즐거운 이유는 2가지. 하나는 도서관에서 사서 봉사를 하며 꿈이란 것을 가지게 되었고, 또 하나는 함께 봉사하는 선생님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다. 세련된 서울 말씨와 플루트 소리 같은 목소리를 지닌 선생님은 바깥양반의 직업적 특성상 해외 여러 나라에서 생활을 하셨는데 해외여행 경험이 극히 적은 나는 토크쇼를 참석한 방청객처럼 선생님께 이야기를 졸라 듣곤 했다.
오늘 오랜만에 만난 선생님께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선생님께서는 기뻐하시며 브런치를 통해 매일 1편씩 글을 쓰고 그 저력으로 책 3권과 함께 글쓰기 강의를 하시는 지인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이야기에 괜히 풀이 죽는 나. '강연은 꿈도 안 꿔요, 책을 내는 작가가 이번 생엔 가능할지 모르겠어요'라는 자조 섞인 나의 말에 부드럽고 단호한 말씀을 주셨다.
서영, 우리 지난달 카페에서 이야기할 때만 해도 서영이 블로그를 시작했다고 했어.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오늘 소식을 전하잖아. 나는 서영의 올해 겨울이 무척 기대돼. 서영은 무척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야. 무조건 서영을 믿어.
수입 창출 능력 없이 돈만 쓰는 자본주의 잉여인이라고 우울해하는 나에게 자본주의의 핵심 인력은 소비자라며 추켜세워주실 때 이미 알아봤지만. 아직 만난 지 1년도 안된 나에게 확신에 찬 눈빛과 다정한 응원을 주시다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어서 해 주신 말씀은 "남의 말을 전한다면 이렇게"의 정석이었다.
우리 애들이 겸을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알아? 겸이 자기 엄마는 화 안 낸다고 그랬다더라. 우리 애들이 겸이 엄마는 지금 이런 상황에서 화 안 낼 거라고 투덜거렸어. 서영은 좋은 엄마잖아, 서영의 그런 이야기를 써도 정말 좋은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
정서적 개방성이 높은 아들의 감정 받이가 힘들어 거울처럼 아이의 희로애락을 비추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친다. 이렇게 일관성 없이 휘둘리는 엄마도 없는데. 겸은 이렇게 매번 뒤통수를 친다.
나의 마음에 나의 대지가 있다. 그곳은 쩍쩍 갈라진 땅. 잎사귀 하나 없이 깡 마른나무 한 그루가 있다. 하늘도 바람도 땅을 닮아 뿌연 누런 낯이다. 물을 찾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라 안절부절못하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고, 그러다 망연자실 외면하기가 부지기수였다. 이따금 찾아드는 비는 대지를 충분히 적시기엔 부족했다. 여전히 흙먼지가 가득한 매마른 땅. 그런데 오늘 이 땅에 딱 필요한 만큼의 비가 쏟아졌다. 땅은 촉촉해졌고 하늘은 맑아졌다. 풀과 꽃이 자라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오늘 이 비구름을 품고 있다 필요할 때마다 하늘에 걸고 충분히 비를 뿌려 줘야지. 땅을 파야지. 강이 흐르고 바다가 생길 수 있도록. 나의 대지가 외롭지 않도록, 마르지 않도록.
그리고 누군가의 마른땅을 발견하면 나의 비구름을 떼어 줘야지. 아무도 외롭지 않도록, 누구의 땅도 마르지 않도록 오늘 내가 받은 이 다정한 비를 세상에 뿌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