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님 생신날

개며느리 탄생일

by 별글이

물놀이의 마지노선을 타기 위해 여행 패밀리와 날짜를 잡았다. 9월 2일 ~ 4일. 날짜를 정하고 세 가족 물놀이 최적의 장소를 물색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즘이었다. 여행을 일주일 앞두고 밤 산책을 나갔을 때 남편이 내게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여행을 취소해야 한다고 했다. 볼멘소리로 왜냐고 물었다.

여보, 9월 3일 어머니 생신이야.

나는 신혼 때부터 11년째 시어머님과 한 집에 산 며느리다. 그런 내가 어머님의 생신을 잊어버렸다.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달력의 전후 사정은 전혀 살펴보지 않은 채 세 가족이 다 함께 놀러 갈 수 있는 9월 2, 3, 4일만 쳐다보며 좋아하고 있었다. 우리 어머님 생신은 추석으로부터 일주일 전인 음력 8월 8일, 절대 잊을 수 없는 그날을 내가 잊은 것이다. 아니, 달력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실수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잡은 날짜가 추석 일주일 전인지 보지 못 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모든 말은 허공에 쏟아내는 변명일 뿐, 청자도 없고 나를 위로할 만한 말도 안 되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날까지 우리가 숙소를 정하지 못했던 것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가?


부랴부랴 언니들에게 전화를 하고 수습에 나섰다. 그런데 뭔가 억울하다. 아이들과 뜯어먹고 살 추억 하나 만들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약이 오를 데로 오른 나는 어떻게든 여행을 가야겠다는 우격다짐으로 평일 워터파크 리조트를 예약해 버렸다. 급하게 정한 일정에 다들 안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남편도 여행 패밀리도 흔쾌히 승낙! 간다고 생각하니 비로소 마음이 유순해진다.


글을 쓰다 보니 삼천포로 빠져서 단락 세 개를 빼두었다. 아, 시어머님 모시고 산 11년은 아라비안나이트다. 그래서 이번 이야기에서는 어머님의 생신 잔치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야겠다.

양지 육수 미역국으로 차린 아침상

생신 날 아침은 당연히 미역국에 찰밥. 어머님께서 좋아하시는 청포묵을 무치고 버섯 들깨 무침을 해 밥상을 올렸다. 아, 며느리 노릇 잘한 것 같은 이 느낌! 생신 전날 저녁 일이 있어 밤늦게 육수를 뽑아 놓고 아침 일찍 일어나 미역국을 끓이고 케이크는 건강에 해롭지 않은 케이크로 주문해 뒀고. 이만한 며느리가 없다 자뻑자찬 했다.

문제는 점심이었다. 생신 케이크를 먹고 나니 식사가 애매해졌다. 밥을 먹자니 배가 부르고 안 먹자니 애매한 그 난감함 속에 남편과 나의 눈이 떡 위에서 마주쳤다. 어머님께서 1년 남짓 다니고 계신 노인 데이 케어 센터에서 보내 준 생신 떡. 재빠르게 떡과 과일을 차려내며 생신날 점심을 떼우 듯 보내 버렸다.

나 이렇게 고기 잘굽는 며느린데

저녁 상은 좋아하시는 한우 사 와서 차려드린다 했다. 얼마 전까지 좋다 하셨는데 당일 반응이 영 시원찮으시다. 매년 당신 생신이면 선물 고맙다며 밥 사주시는 멋진 어머님. 올해도 사주시냐는 남편의 물음에 ‘내 생일인데 내가 사냐?’ 하며 멋쩍어하시며 되물으신다. 아하, 올해는 또 다르시구나! 혹시 100% 몽골 캐시미어 니트가 마음에 안 드셨나. 급하게 이곳저곳 전화해 본다. 토요일이라 좋은 곳은 예약이 다 찼다. 결국 단골 한우 정육 식당에서 생갈비와 꽃등심을 결제한다. (무려 한우! 가격은 상상에 맡긴다.)


생갈비는 살살 녹지만 등심은 질기다며 안 드시는 어머님. “어머니! 등심도 연해요, 드셔 봐요!” 우겨보지만 씹다 뱉어 버리신다. 가게 경제 위기로 한우 생갈비는 한 접시도 버겁다. 효부는 이미 포기했고 개며느리는 눈감고 모른 척한다.


일주일 뒤엔 추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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