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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글이 Jan 03. 2023

서른아홉의 꿈

죽기 전에 꿈이 생겨 다행이야.

집으로 들어오는 길, 시린 밤공기를 입김으로 가르며 바쁜 걸음을 옮겼다. 오래전부터 만남을 약속했던 멘토이자 친구인 쑥 선생님을 드디어 만난 오늘. 선생님의 사는 이야기와 나의 진로 이야기를 나누며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더니 시간이 벌써 한가득 지나버렸다. 선생님과 내가 서로의 삶으로 온기를 나누는 동안 남편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아쉬운 자리를 정리하며 부랴부랴 전화를 걸어보니 다들 컨디션이 엉망이라고 한다. 여든넷 시어머니도 열 때문에 힘들어하시고 설상가상 남편도 안 좋다는 말에 선생님과 서둘러 인사를 나누고 종종 걸어 약국을 들렀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살얼음 낀 바람 덕분일까. 정신이 맑아지며 선생님과 나눈 대화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선생님은 안부 전화를 주실 때마다 무엇이 불안해서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냐고 묻곤 하셨다. 이미 충분한데 왜 이렇게 자신을 믿지 못하냐고 말이다. 오늘 만난 자리에서도 그냥 한 번 해보라며 넌지시 타이르신다. “현타가 온 거예요!” 내가 답했다.


시도를 해 보지 않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해낼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일을 벌였다. 그리고 선생님이 1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뤄낸 일을 하루아침에 이뤄 내길 바라고 있는 부끄러운 나를 만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날 이후 벌여 놓았던 어줍지 않은 일들을 모두 거둬들였다. 나의 방황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라고 그래서 공부하겠다 다짐한 것이며 다만 나만 잘할 수 있는 무엇이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고 그것을 꼭 찾아낼 것이라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냉철하게 나를 바라본모습에 수긍과 격려를 해 주셨다.


선생님을 만나고, 나처럼 무의식 속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로 삶이 버거운 이들을 도와주고 마음의 근육을 키워주는 선생님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삼십 아홉 해를 살며 처음으로 누군가를 존경하며 따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저 엄마가 시키는 대로 사는 수동적인 딸이었고 불안도가 높아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시도조차 하지 못 했고 그 누구도 완전히 믿지 못하던 겁 많고 의심 많은 나였는데. 상담 심리학과 편입을 준비하며 그림책 전문가 과정을 공부하고 만나는 새로운 사람을 겁내지 않으며 세상에 있음을 외칠 수 있는 내가 된 것에 늘 감탄하고 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며 다 ‘선생님 덕분’이라고 하면 어이없게 바라보시지만 나는 내가 제일 잘 아니까. 선생님이 공감 못하셔도 괜찮다.


이 글을 쓰며 또 한 번 느낀다. 여기 이곳에 기록을 남기는 순간 나의 꿈을 또 세상에 알리는 것인데 이렇게 막 쓰며 당당하게 말하는 것 보면 확실히 많이 변했다. 아니, 많이 컸다. 내 꿈은 그림책 테라피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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