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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글이 Jan 04. 2023

여섯 살은 다 알아

엄마의 개벼운 주머니 사정까지.

독감이 막바지에 접어든 우리 집. 다들 기체 후 일향 만강하다며 아침을 맞이했는데 강만 아직도 열이 미적지근하게 남아 있었다. 오늘도 어린이집 등원은 틀렸다. 이미 비강에 가득 찬 코 때문에 항생제를 먹고 있는데 열이 계속되니 병원을 갈 수밖에 없다. 집에서 하루를 보내려 하니 쉽지 않은 하루가 예상되어 나간 김에 백화점을 들러 보자 계획을 세웠다.

병원과 약국에서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 덕에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백화점에 도착하자마자 밥부터 먹자며 강을 데리고 식당으로 갔다. 강과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양은 고작 1인분. 그것도 남는다. 그래도 왠지 눈치가 보여 까르보나라, 마늘 빵, 양송이 수프를 주문한다. “너무 쪼꼼 시킨 거 아니야?”라고 묻는 강. “이것도 남을 걸?” 내가 답하니 깔깔 웃는다. 6살도 안다. 엄마와 자기가 아무리 많이 먹어도 지금 시킨 건 적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의 예상은 하나 빗나가지 않았다. 수프도 빵도 까르보나라도 조금씩 남았다.


밥값만 쓰자고 마음먹었으니 커피 맛집들의 여유를 무시한 채 강과 쇼핑에 나섰다. 나보다 과감하게 매장에 들어가 이것저것 들춰보고 평가하는 강과의 쇼핑은 묘한 카타르시스가 있다. 매장 직원이 이것저것 보여줄 때 “그런 옷은 놀 때 불편해요.”, “나는 공주 옷 싫어해요.”라며 대놓고 단호하다. 물론 그 옷들은 하나같이 내 취향이지만 일찍이 딸엄마의 특권인 인형놀이는 포기했기에 나는 만면에 난색을 표하며 어깨만 으쓱할 수밖에 없다.

4층을 다 들쑤시고 나니 이제 어디 가냐고 물어온다. “아빠 옷 보러 갈까?” 한 번에 좋다는 강. “아빠 옷 한 벌 사주게 가 보자.” 비장한 얼굴로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서는 모습을 나만 봐서 아쉽다. “강이 돈 많아? 여긴 백화점이라 돈이 많이 필요한데?”라 물었더니 “어! 나 돈 많아!” 하며 한 번 더 비장해진다. 저금통에 7만 원 정도 있는 것 같긴 했는데. 어쨌든 이럴 땐 웃으면 안 된다. “좋아, 그럼 아빠 옷 사주러 가보자!”며 나도 함께 비장해져야 한다.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아동복 매장과 달리 남성복 매장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차갑고 어둡고 칙칙했다. 분위기에 적응하는데 몇 분이 걸리는 나와 달리 강은 발 빠르게 여기저기 들어가고 과감하게 눈을 돌려 구경하기 시작했다.


욜랑 욜랑 바람처럼 들어와 올려다보다가 눈 마주치면 돌아 나오기 바쁜 꼬마손님을 바라보며 직원들은 웃기 바쁘고 나는 무안해서 바빴던 시간. 1/3 즘 돌아봤을까? “아빠 옷 못 사주겠다. 마음에 드는 게 없네!”한 마디 하신다. 마음에 드는 것 있었으면 그 기특한 마음 꺾을 수도 없고 어쩔 뻔했나. 기특한 딸 보며 흐뭇한 마음으로 놀란 가슴 쓸어내린다. 딸! 엄마의 두 가지 마음도 넌 알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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