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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글이 Jan 04. 2023

예사롭게 살고 있지

그 쉬운 일을 이제 할 수 있게 되었어.

주섬 주섬 옷을 챙겨 입는다. 새로 산 바라클라바를 머리에 뒤집어쓰니 목까지 따뜻하다. 겨울 운동복을 살까 잠시 고민하다 올겨울만 그냥 해보자며 마음을 바꾼다. 아침상을 간단히 챙겨 두고 단지 안 코트로 향한다. 창백한 공기가 폐 속에 들어와 체온을 1도 낮춘다. 코로 들이키기 무서울 정도로 차가운 영하의 아침. 이런 날 일 수록 놓칠 수 없다. 속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겉은 쨍하게 시린 겨울날의 테니스는 살아있음을 선명하게 느끼게 해 준다. 머릿속에 다른 생각은 들어올 수 없다. 집중이 흐트러지는 순간 공은 다른 곳을 향하니까. 그렇게 오늘도 '얼죽테'(얼어 죽어도 테니스)를 외쳤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희미한 체온이나마 세상에 전하려 애쓰며 별이 떠오르지만 빛의 온기는 땅에 닿기 전에 식어 버린다. 춥다. 서둘러 집에 들어와 샤워기부터 틀었다. 한 겹 한 겹 벗어내고 뜨거운 물에 몸을 녹인다. 살아있구나. 나는 살아있다.


아침을 간단하게 먹은 탓에 밥이 없다.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쯤 되면 이 단조로운 일상의 나열이 뭐 그리 대단하여 글까지 쓰나 싶을 것이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한다. 일단 점심으로 아보카도 쉬림프 샐러드로 주문하고. 점심시간이니 먹는 것부터 이야기해 보자. 2, 30대 때 나는 끼니에 대해 정성을 들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쏟아질 외로움이 두려워 혼자 있을 때 끼니 거르는 일은 예사였고 한 끼를 굶으며 살찌지 않겠구나 위안하며 살았다. 몸의 근육량이 10%가 채 되지 않을 때도 나의 식이 습관에 큰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나는 마르고 싶었고 예쁘고 싶었고 주목받고 싶었고 사람들의 중심에 서고 싶었지 건강하고 아름답게 나와 잘 사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니 사는 것 자체에 큰 관심이 없었다. '언제라도 죽을 수 있지',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할 것 없어.'라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으니까. 죽음이란 밀도 높은 우울이 머리와 마음에 들어차 있었으니 움직임 또한 느리고 둔했다. 숨 쉬기도 운동이라 귀찮을 때가 있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운동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결혼 후에 격변기를 맞았다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내가 되고 겸을 만나 엄마가 되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가족들의 식이와 건강에는 정성을 다 하며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최고가 되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내 끼니와 삶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 누군가를 위해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여전히 나는 안중에 없었고 사람들 속에 있으면 내 삶은 빛나는 듯했지만 혼자 일 땐 여지없이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가족보다 밖에 있는 사람들을 찾았다. 팬데믹 동안은 핸드폰 속 친구들과의 대화와 만이 유일한 낙이었다. 잠도 자지 않고 밤을 새워 넷플릭스를 보고 온갖 정보력을 갖추고 사람들과의 대화에 빠져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할머니가 있으니까'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최소한의 엄마 역할만 했고 남편의 외로움은 등한시했다. 타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나를 지켜야 할 때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 하고 산산조각 난 마음을 수치스러워하며 자기혐오 속에 살았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나를 지켜야 했음에도 제대로 말하지 못해 울면서 들어온 날. 다친 마음 부여잡고 거울 앞에 섰을 때 선현한 의식의 무풍지대에 닿아 '죽어야겠다'라고 결심했다. 내 눈을 들여다보며 단단히 마음먹고 있는데 갑자기 겸이 나에게 뛰어와 끌어안았다. "엄마 어디 가면 안 돼. 내 옆에 꼭 있어야 해."  나는 웃으며 '이 밤에 내가 어딜가냐'고 물었다. 그러자 겸이 그랬다. "몰라, 그냥 갑자기 엄마가 어디 갈 것 같아, 걱정돼." 단 한 번 소리로 꺼내 본 적 없는 계획을 겸은 어떻게 알았을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날이었다. 나도 이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것을 처음 인식한 날이.


처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움을 청했다. 그 바쁜 와중에 전화를 주는 선생님은 처음 본 사람이 너에 대해 함부로 말한 것에 흔들리지 말라고, 그런 사람이었다면 나는 너와 친구 하지 않았다고 단호하게 우울의 꼬리를 잘라 주었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넘쳐 털어놓을 수밖에 없을 때 "그 먼 곳은 혼자 못 보내. 같이 가자" 며 장난과 진담을 적절히 섞은 남편 특유의 따뜻함이 나의 마음에 다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이미 내 삶은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었고 고정된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나만 모르고 있었다. 무엇이 이토록 나의 자리로 가는 길을 막고 있을까. 지척에 두고도 갈 수 없는 어려운 숙제를 풀어내고 싶었다.


문득 엄마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엄마는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내가 내내 걱정이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친구를 만들어 주시려 한 손에 새우깡 한 봉지를 다른 손에는 내 손을 붙잡고 다니며 부단히 애를 쓰고 다녔다 하셨다. 당신이 그렇게 애를 써서 나를 잘 키웠다고 아직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신다. 그럼. 불같은 성격 탓에 타인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엄마는 외로운 당신의 삶을 딸에게 물려주지 않으시려고 최선을 다 하셨다. 그렇게 엄마만의 방식으로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아낌없이 나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목숨과 같이 여기신다. 나는 그래서  엄마를 원망할 수가 없었다.


다만 다섯 살의 나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혼자 놀아도 괜찮다고, 너는 너로서 충분하고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하고 네가 잘 커서 이렇게 내가 되었다고 전해 주었다. 애를 쓰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과 사랑을 주고받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고맙다고 다정한 인사를 건넸다. 외로움이 아픔으로 솟아오를 때마다 수없이 만나고 온 다섯 살의 나는 이제 조금 편안해진 얼굴로 지금의 나를 맞이해 준다.


아무리 외우려고 해도 외워지지 않던 좋아하는 문장이 있다. 이제는 외우지 않아도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말. 체화되어 필요한 이에게도 나눠 줄 수 있는 말.

누군가가 너를 어떻게 대하든
그것으로 너의 소중함을 평가하지 마.
항상 기억해. 너는 중요하고,
소중하고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넌 누구도 줄 수 없는 걸
이 세상에 가져다줬어.
너는 있는 그대로 충분해.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중에서

매일 이 말을 되뇌며 예사롭게 혼자 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일찍 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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