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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글이 Jan 05. 2023

집단 지성의 힘을 빌어먹는 중

필사 인증 모임에 활동하면서 말이다.

피곤하니 머릿속이 하얗다. 무슨 글을 써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고 있다. 어젯밤 너무 늦게 잔 탓이다. 열두 시에는 자야 하는데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겨울학기 그림책 전문가 과정과 내가 속한 협회의 독자연구과 모임이 이어 있는 날이었다. 3시간 수업을 듣고 한숨 돌릴 틈도 없이 바로 줌에 접속해 12시까지 모임을 했다. 다음 달 모임 때 발표할 자료를 만들어야 해서 조사까지 하고 나니 한 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어제 아침 눈 떴을 때부터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그쯤 되니 아동용 의자에서 몸이 혹사 당해 불쌍한 느낌이었다. 계속 앉아만 있었더니 다리는 퉁퉁 부어 아까 벗은 양말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스트레칭이라도 하고 자야 하는데 필사 인증이 남아 있었다. 미뤄 볼까 생각했지만 몰아 쓰면 대충 하게 되니 그냥 쓰자 마음먹고 거실로 나왔다.


매주 화요일은 예술 분야의 책이 제시문으로 올라온다. 주로 미술 쪽 책인데 이 분야는 읽어 본 책이 없어 화가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깜짝 놀란다. 어제는 반고흐의 이야기가 담긴 예술 분야 책이 필사 인증 제시글이었다. 반고흐가 작가가 되었다면 소설을 무척 잘 썼을 것이라는 작가의 이야기를 필사하며 고흐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를 떠올렸다.


불안하고 우울했던 고흐의 젊은 시절, 그 격정을 그림으로 풀어보라며 그의 손에 붓을 들려준 동생 테오. 고흐는 그림을 팔지 않았으므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지만 테오의 전폭적인 지지로 계속 그림에 집중할 수 있었고 오늘날 우리가 향유할 수 있도록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타살인지 자살인지 아직도 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고흐의 생애 마지막 순간, 어쨌든 사랑하는 동생 테오의 품에서 숨을 거둘 수 있었음이 얼마다 다행이던지 마지막 장면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났다. 지금 시대에 태어났으면 분명 광기 어린 멋진 화가로 사랑받았을 텐데! 그런 기억을 더듬으며 고흐는 너무 낡은 시대에 지나치게 젊게 태어났다며 뭘 해도 잘했을 것 같다는 희한한 단상을 적어 인증샷을 업로드했다.  


다른 멤버들의 필사 내용을 훅훅 둘러본다. 다들 고단하고 어려운 삶 속에서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해나갔던 고흐를 보며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있었다. 제시된 글로 예전에 봤던 영화를 훑고 감상에 젖은 나의 단상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제목이 [반고흐 인생 수업]이니 제목을 토대로 전체 내용을 유추하며 글을 읽고 생각을 정리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어제로 필사 24일 차였으니 좀 늦은 감이 있지만 필사 운동의 목적을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볼펜으로 글을 써서 사진을 찍고 올리는 일련의 작업이 생각보다 번거로워 다시 하기는 싫었다. 부끄러움이란 나머지를 남겨두고 이불 킥 몇 번 하는 수밖에 없다. 새벽 두 시가 넘었으니 자고 일어나면 새로 올라 올 1월 5일 제시문은 진짜 잘해 봐야지 마음먹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덕분에 다양한 문장을 만나며 혼자서는 절대 손대지 않을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를 만난다. 전혀 모르는 분야에 대해 단상을 남기기 위해서는 필히 추가적으로 올려주시는 책의 일부분과 함께 공부가 필요하다. 그 작업을 하다 보면 새로운 시각이 만들어진다. 잘 썼다, 어깨에 힘주다가도 다른 분들의 사유를 읽으면 저절로 겸손해진다. 아니 쭈글쭈글해진다. 책 많이 읽으시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책 읽는 흉내만 내고 있는 나의 아무 말 대잔치가 얼마나 가소로울까. 그래도 평가는 없으니 뻔뻔하게 써 올리고 다른 선생님들의 생각을 쏙쏙 빨아들인다. 필사로 단결된 모임에서 집단 지성의 힘을 빌어먹으며 한 단계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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