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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글이 Jan 06. 2023

독서를 평가합니다.

독서 인증제 마감일이 임박한 1월의 진풍경

하늘에서 불덩이가 쏟아지는 듯했던 지난여름, 겸의 방학은 무려 100일이었다. 덕분에 매일 물놀이를 하며 즐겁게 살았지만 당겨 쓴 방학 덕분에 수업 시수 맞춤을 위해 겨울 방학은 단 10일. 근처 중, 고등학교가 어제오늘 졸업식을 하며 방학에 들어갔지만 겸과 그의 친구들은 여전히 등교를 하고 있다. 학사 일정이 많이 늦춰진 관계로 22년 독서 인증제 마감일이 1월 30일로 잡혀있다. 독서 인증제는 매년 대출 권수와 독서 감상문 편수에 따라 1급부터 3급까지 독서 급수를 매기는 독서 평가 제도이다.


나는 학교 도서관 사서 봉사 학부모다. 매주 금요일 학교로 출근해 아이들의 도서 대출 반납 일을 하며 일주일의 마무리를 하고 있다. 그런데 11월만 해도 즐겁게 책을 빌려보던 아이들이 연말이 되며 초조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몇 권이나 빌렸는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하는 아이들이 많아졌고 1년 대출 권수 조회에 아이들의 희비가 엇갈리기도 했다. 하교 후 도서관 문을 잠그기 전까지 책을 읽으며 인증 권수를 채우려 애를 쓰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의 독서 목적은 대출 권수 채우기. 그래서 읽고 싶은 책, 수준에 맞는 책, 필요한 책인지 생각해 보지 않고 손에 잡히는 데로 서가에서 뽑아와 대출을 찍는다. 1학년이 "조선왕조실록"을 대출하겠다 가져오면 말 다하지 않았나? (오죽하면 담임 선생님이 그 책을 들고 와 반납해 달라고 하셨다.) 한동안 1~2학년들이 가장 많이 대출해 간 책이 "핵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이어서 궁금해서 겸과 읽어 본 적이 있다. 성인인 내가 봐도 무섭고 슬픈 고학년 혹은 청소년을 위한 책이었다. (물론 굉장히 잘 써진 책이라 무섭다고 펑펑 울면서도 겸은 끝까지 읽어 달라고 했다.)  


독서인증제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무엇을 목적으로 만든 평가제도일까? 정말 아이들을 위해서 만든 제도일까? 부모들에게 보여주기는 참 좋다. 우리 학교는 아이들에게 책 읽히기를 권장한다고 잘 포장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덕분에 책을 좋아하던 아이들도 담임 선생님의 압박에 질려 버릴 지경이다. (물론 모든 담임 선생님이 그렇지는 않다. 개인별 대출 권수를 불러주시며 정해진 일정량을 채우라고 권고하시는 선생님, 잘 쓴 독서감상문과 못 쓴 독서감상문을 구별하는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아이들의 자율에 일괄 맡기는 선생님도 계시다.) 책이란 그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고 경험하고 이를 토대로 자신의 지혜를 만드는 마법 지팡이와 같은 도구다. 난생처음 만나는 어려운 단어도 앞, 뒤, 행간을 읽어내며 그 뜻을 파악하고 나의 언어로 가져가는 것이 독서의 목적일 것이다. 그런데 독서를 평가하겠다 마음먹은 인증제도 덕분에 아이들은 느긋하게 즐기며 독서할 수가 없다. 일주일에 단 2권만 대출이 가능하니 대출 권수만 채우는데 급급해 5분도 채 읽지 않고 반납하고 다른 책을 빌려간다. 이런 상황을 마주해야 할 때마다 부모로서 여러 가지 감정이 올라온다.


책 한 권을 읽는 행위는 한 스승을 섬기는 것과 같다고 하는 만큼 학교의 독서 교육은 아이들을 평생 독자로 만든다는 철학을 원칙으로 계획되면 좋겠다. 한 가지 책을 읽고 그 책을 통해 토론을 하며 친구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나의 생각을 발표하며 모두의 생각이 수용된 결과를 이끌어 낸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책을 통해 너와 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수용할 수 있는 수업을 한다면 아이들의 공감능력과 자존감은 덤으로 올라갈 텐데 독서 인증제로 아이들의 마음이 급해지는 것을 볼 때마다 씁쓸한 마음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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