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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글이 Mar 07. 2023

공동육아 중입니다.

이제 일 년 남았네요.

드디어 새해가 밝았다. 우리나라 아이들과 엄마들의 진정한 새해는 3월 아니겠는가. 새 학년, 새로 배정받은 반,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 3월은 새로운 연을 맺는 첫 달로 봄바람과 겨울바람이 뒤엉킨 계절에 걸맞게 설렘과 긴장으로 정신이 쏙 빠지는 달이다. 그런데 겨울 방학이 열흘인 탓이었을까? 3학년과 4학년의 경계가 모호해진 겸은 긴장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새 학년을 맞이했다. 이제 어린이집의 최고 형님이 되었다며 자랑스러워하는 강의 기분은 말할 것도 없었다. 참 고맙게도 아이들은 올해 3월을 설렘으로 맞이하는 중이다.


나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엄마다. 2020년 2월 코로나 시작 즘 겸이 졸업을 했고 지금은 강이 7세로 재원 중이다. 시중에 ‘공동육아’라는 말이 많이 통용되고 있지만 우리가 다니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조금 많이 특별하다. 우리 어린이집은 “공동육아와 공동체 교육”이라는 단체에서 만든 교육철학으로 운영하는 곳으로 어린이집은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이라 불리고 부모와 교사 아이 세 명이 3인 삼각 경기 하듯 보육하는 곳이다. 물론 기준은 아이. 양쪽에서 교사와 부모가 아이와 소통하며 맞추고 중간에 넘어지면 부모, 교사는 아이와 의견을 조율해 졸업이라는 결승점까지 아이의 속도로 뛴다.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의 일대 이사장은 책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의 저자 박혜란 님으로 책에서 묻어나는 그분의 철학이 교육 기관 운영 철학에 녹아 있다. 예를 들면 아이는 졸업이라는 결승점에 닿을 때까지 터전에서 공동체 생활을 배우고 교사와 아이들은 서로 평어를 쓰며 수평적인 관계를 맺는다. 방 안의 생활규칙은 매 해 3월 교사와 아이들이 의견을 조율해 정하고 인지교육은 일체 지양하고 사회성, 공동체 의식, 생태 감수성과 같은 비인지 교육에 몰입한다. 그래서 덧셈 뺄셈은 몰라도 뜨개질과 자수는 수준급으로 뜨고 한글과 영어는 읽을 줄 몰라도 친구와 선생님의 표정과 마음은 읽을 수 있다.


그와 더불어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배우는 것에 주력하고 있어 생일이나 졸업식 땐 한복을 입고 진달래가 피면 따다가 화전을 구워 먹는다. 단오와 정월대보름에는 마을 잔치를 열어 재원 하는 동안 배운 풍물로 길놀이도 크게 한다. 특히 우리 터전의 큰 행사 중 하나인 단오제는 어린이집 선생님들과 바로 옆 경로당 어르신들, 어린이집 재원생 부모들이 잔치 음식을 판매하고 각종 행사를 주최하며 마을 잔치 규모로 열린다. 단오제 외에도 한 달에 한 번 교사와 부모가 만나 아이들이 지낸 이야기를 듣는 방모임을 하고, 일 년에 두 번 터전 대청소를 한다. 일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보내는 부모들이 아이들의 재롱잔치나 학예회를 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릴 때 우리는 아이들을 위한 부모 공연 준비로 골머리를 싸매고 땀을 흘린다. 아이들은 이런 부모를 보며 터전을 내 집처럼 느끼고 내 친구의 부모도 우리 엄마 아빠처럼 편히 대한다.


부모참여가 필수 조건이다 보니 부모들 간의 화합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매년 방이 바뀌면 낯선 부모들과 안면을 터야 하고 친분을 쌓아야 한다. 첫 방모임 주간이 지나면 3~4월 중 각방에서 십시일반 비용을 마련하여 야유회를 가는 이유다. 야유회를 다녀오면 단오제 준비와 함께 평생 함께 지낼 수 있는 가족 같은 친구들이 생긴다. 우리 가족에게도 겸을 졸업시키며 함께 일했던 엄마들이 이제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함께 여행을 다니는 편한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겸이 다닐 때와 형편이 많이 달라졌다. 17년도에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전환된 우리 어린이집은 21년도에 정책에 따라 민간 위탁 운영이 종료되고 사회 서비스원이라는 국가 기관 소속으로 변경되었다. 시에서는 우리 어린이집의 특성을 파악하고 있어 다행히 공동육아의 기조를 중심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해 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많다. 위에 열거한 일보다 훨씬 더 많은 일들을 부모들이 손 걷고 나서서 해야 하는데 공동육아의 이해가 전혀 없이 오직 점수로 선발된 신입생 부모들 중 한 두 명은 (한 두 명이라고 믿고 싶다.) 우리의 공동체 문화나 부모 참여에 대해 비 효율적이고 불편한 것이라고 토로한다. 그리고 민원으로 기관이나 시청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뜻이 있어 선택한 사람들과 선생님들은 진이 빠진다. 오늘 첫 방모임에 가자마자 아이들의 방을 청소하는 일일 청소 당번도 신청하는 부모에 한해서만 시키겠다고 하니 씁쓸하기만 하다. 아이들의 하루를 닫아주고 선생님들의 노고를 덜어주는 그 청소가 그렇게 하기 싫었을까.


나도 어려울 때가 있다. 특히 내향적 인간인 내가 오늘처럼 방모임이 끝나면 둘 곳 없는 유체와 동공으로 삼삼 오오 모인 그 사이에 어정쩡이 끼여 있을 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당장 그만두고 싶다.’라는 생각이 간절하게 든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버티고  집으로 돌아와 겸과 강을 보면 ‘끝까지 해야지. 꼭 해야지.’라는 다부진 마음을 다시 먹게 된다.


어느 날 겸의 친구가 “야, 이 바보야!”라고 외친 날 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와, 너는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런데 넌 정말 천재야.” 미소와 함께 엄지까지 치켜세우며 말하는 겸을 보며 그 친구는 겸을 더 이상 놀릴 수 없었다고 한다. 겸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대처할 수 있었냐고. “응. 나 바보 아닌 거 아니까.” 문득 한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한 아이가 선생님에게 왜 그렇게 뚱뚱하냐고 물은 것. 그 선생님의 대답은 이랬다. “내가 뚱뚱한게 어때서! 세상엔 나같은 사람도 있는거야.“


이 이야기들이 가슴에 콕 박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강과 함께 터전으로 등원한다. 뼈를 갈아 넣어서 마지막 일 년을 버틸 예정이다. 올해 새로 들어온 신입 부모님들도 2~3년 뒤 아이들을 보면 나처럼 생각할 것이다. “아, 공동육아 하기를 잘했어.” 그러니 부디 공동육아에 지치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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