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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글이 Mar 14. 2023

오늘은 어묵 꼬치 먹는 날

가는 추위가 아쉬운 이유

우리 동네에는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푸드 트럭들이 있다. 동네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요일별로 방문하는 푸드 트럭의 일정이 공유되어 있고 지금 어떤 트럭이 어디에 와 있는지 실시간 공유되기도 한다. 모든 푸드 트럭이 정차하는 우체국 근처 사거리부터 성당 입구까지는 우리 동네에서 가장 힙한 곳이다. 그곳에는 제철 과일 트럭을 비롯해 팔천 순대, 와플 트럭이 오고 간간히 개인 벼룩시장과 땡처리하는 옷 좌판이 펼쳐진다. 여름이면 압력솥에서 바로 쪄낸 옥수수를 팔던 트럭 사장님은 근처 몫 좋은 자리에 입점하셨으니 푸드 트럭의 인기가 실감 난다.


그중 단연 인기는 어묵 트럭이다. 맛있기로 소문난 어묵 트럭은 우리 동네에 들어온 지 2년 정도 된 것 같다. 당시 코로나 상황이었음에도 앞은 언제나 뜨거운 어묵꼬치와 사투를 벌이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삼삼 오오 모여 있었다. 지금이야 추위가 벼랑 끝에 매달린 초봄이지만 한겨울 혹독한 추위 속에서 베어 문 뜨끈한 어묵 한 입은 마음의 추위까지 달래 주었겠지. 그렇게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어묵 트럭이 세워진 곳은 우리 동네 명소가 되었다.


겸이 엄마 아빠와 ‘포켓몬고’를 함께 하는 것이 소원이었으므로 우리 모두 다 함께 게임을 하게 된 요즘, 저녁을 먹으면 핸드폰을 등불 삼아 포켓몬을 잡으러 나선다. 어느 날 저녁 터전 방모임이 있는 날이라 나는 없었고 남편이 겸과 강을 데리고 나갔다. 집에 돌아왔을 때 셋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나에게 달려들어 그날 저녁 이야기를 쏟아냈다. 우연히 마주친 어묵 트럭의 뜨끈한 어묵 향기가 코를 찔러 하나씩 먹었다는 것이다. 어묵에 홀딱 빠진 셋은 어묵 트럭 예찬론자들이 되었고 사장님에게 다음 방문일을 미리 물어보며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오늘도 남편은 야근이다. 겸은 어김없이 포고를 하러 나가자 졸라댄다. 나는 아침 일찍 요가를 하고 이미 매우 피곤한 상황인데. 매일 ’포고‘ 30분은 보람찬 하루를 보낸 겸이 누릴 수 있는 권리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계약에 따라 몸을 일으켜야만 했다. (아, 부모의 삶이란!) 터덜터덜 걸어가는 길 위로 총총히 떠있는 별들은 속절없이 반짝인다. 특히 며칠 전 인공위성이라고 철저하게 오해했던 금성은 반사판을 활짝 펴고 무람없이 태양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욱신 거리는 삯신을 질질 끌고 걸어가는 내 길 위에 어묵 트럭이 보인다. 구수한 멸치 육수에 짭조름한 소금과 고향의 감칠맛이 어우러진 뜨끈한 국물 속엔 프릴처럼 접혀 꼬챙이에 꽂힌 어묵들이 느른하게 누워있겠지. 갑자기 내 속에 내재되어 있는 생존 본능이 괜스레 식욕을 부추긴다. ”야! 먹어야 살지! “ 그래 먹어야 산다. 순간 내 의식은 어묵에 몰입해 손과 발을 이끈다. 칼로리 계산 따위 지나가는 개에게 준지 오래다. 어묵 꼬치 하나를 집어 들고 수명 짧은 꽃샘바람에 식혀 한 입 베어 문다. 아,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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