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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글이 Mar 15. 2023

그들처럼 간절히 바라본다.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이 개봉했다. 우리 부부가 다섯 번이나 봤던 <<너의 이름은>>은 마코토 감독의 작화와 스토리텔링이 일본의 신화와 애니메이션만이 연출할 수 있는 스케일에 얹혀 충격과 감동을 준 작품이었다. 특히 그전까지 일본 애니메이션을 한 번도 본 적 없던 남편이 그 매력에 매료되어 이번 신작<<스즈메의 문단속>>을 미리부터 챙기고 있었다.


무슨 사정인지 도로를 다 막고 포클레인과 드릴이 멀쩡한 아스팔트를 다 뚫고 있는 통에 극장가는 길이 꽉 막혀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우리는 그렇게 좋아하는 나초 하나 사들지 못하고 상영관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는지 자리에 앉자마자 딤머등이 꺼졌다.


아직 제목도 뜨지 않은 프롤로그에서 이미 이야기가 끝난 것 같이 영화는 시작되었다. 2013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엄마를 잃은 스즈메는 학교 가는 길목에서 만난 낯선 청년에게 마음을 홀딱 빼앗긴다. 하지만 낯선 청년은 그저 이곳 어딘가에 폐허가 있냐는 이상한 질문만 하고 스즈메를 스쳐 지나간다. 스즈메는 시뻘게진 얼굴로 낯선 청년을 생각하다가 위험을 핑계로 그가 향한 폐허로 돌아간다.


사건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시퀀스 하나가 펼쳐질 때마다 각각 다른 이야기들이 단단한 연결고리로 엮여 튀어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끝에 이르렀을 때 처음과 만난 이야기는 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지 말고 살아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불확실한 미래가 두려워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나에게는 흔한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남편과 나는 잠깐 대자연의 부름을 받아 화장실에 다녀온 뒤 주린 배를 채우러 식당으로 향했다. 자리에 앉는 남편이 불쑥 그런 이야기를 했다.

“일본에 왜 그렇게 많은 미신과 신화가 있는지 알겠네. 평점이 8점대고 호불호가 많이 갈려서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어. “


남편도 내가 본 그 부분을 본 것일까? 일본은 불의 고리 끝자락에 4개의 판이 모이는 해구, 그 위에 위치한 섬나라로 엄청난 지진과 화산, 해일 같은 자연재해를 많이 겪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들에게는 세계 4대 종교에서 말하는 창조주나 유일신의 존재가 믿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종교에서 말하는 이 세상을 창조한 신이란 본디 자비롭고 사랑이 넘치며 인간의 죄를 대신해 희생하고 고행하며 어리석은 인간을 구한 존재들인데 흔들리는 땅 위에서 신을 향해 인간이 할 수 있는 기도가 무엇이 있겠는가? 처음엔 그저 죽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지만 지속된다면 신의 저주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이런 사유로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3명이나 배출한 나라임에도 미신과 신화가 공고히 전수되고 있을 것이다. 특히 그들이 고양이를 신성하게 여기며 신으로 받드는 미신적 신념은 고양이(특히 검은 고양이)에 대해 배타적이거나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이해하기 어렵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부분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신보다 자연 그 자체가 두렵고 대단한 존재로 보일 테고 고양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묘한 생명체로 간주되니 그들의 맥락에선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매일 어떤 재난이 닥칠지 모르는 그들의 삶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며 나누는 인사가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잘 다녀와.”라는 말속에 오늘 하루 무사히 보내고 집에서 다시 만나자는 묵상의 언어가,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답 속에서 집으로 돌아와 당신과 함께 오늘도 내일도 살고 싶다는 생의 의지가 흘러나오는 장면이 내 마음에 내려앉아버렸다. 그리고 이 마음들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결코 배제시킬 수 없는 감정임을 인정해야만 했다. 도처에 죽음이 널려있음에도 우리가 오늘을 살아내고 내일을 준비하며 삶을 치열히 사는 이유는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은 그 마음 덕분일 테다. 그 마음으로 열여덟 살의 소녀 스즈메도 그 낯선 청년을 구하고 수백만명의 생명을 구한다.


환상적이고 미신적인 판타지가 있어 그들은 위로받고 희망을 가질까? 나도 바래 본다. 실제로 영원히 다이진과 사다이진이 미미즈와 싸우고 토지시가 뒷문을 단속하며 그들의 땅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자신들이 그토록 원하는 평화로운 삶이 보편적 가치임을 깨닫길 바란다는 말이다. 독도나 동해를 일본의 땅, 일본의 영해라 우기며 호시탐탐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그들의 욕망도 함께 단속되길 간절히 바란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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